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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Sep 17. 2020

화무십일홍- 인생의 덧없음.

매일매일 죽음을 분석하는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일상 이야기.

나는 원래 인생 다 산 듯 한 초월적인 태도가 어린 시절부터 좀 있었는데,

응급의학을 10년 정도 하면서 나의 그런 부분이 좀 더 심화되었고,

호스피스 완화의학을 하면서 좀 더 세분화되고 있다.





 몇 주간 다른 로테이션을 하고 다시 우리 과로 돌아오면서 환자 명단을 죽 흩어보는데, "어?!?"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A 씨는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젊은 환자인데 코비드가 한창이던 올봄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래서 수술하기로 하고 수술 전 피검사를 하러 오셨는데 거기서 이상 소견이 보여서 씨티를 다시 찍어봤더니 그 사이에 암이 급속도로 퍼져서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너무 못 먹으시고 살도 너무 빠져서 우선 입원을 하고 튜브를 박으려고 했는데 몇 번 실패하고 결국 외과에서 수술로 하기로 하고 마취과로 보내면서가 내가 본 마지막이었다. 수술하러 왔다가 암이 퍼져서 수술 못하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일 텐데, 그 뒤로 하는 다른 시술들마다 잘 안 풀려서 매번 너무나도 괴로워하시던 환자분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기억이 선하다.


병원 가까이로 이사온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병마와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시던 그분.

계속되는 악재로 괴로워하시면서 이렇게 계속하는 것마다 안 되다가 결국은 병원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퇴원시키고는 집에 가서 쓸쓸하게 죽을까 봐 너무 두렵다고 말하시던 그 환자분.

 악재가 한 번 터질 때마다 PCA(Patient Controlled Anaglesia- 환자 자가 통증 조절기) 사용량이 확 뛰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던 그 환자분.


그게 한 달쯤 전이었는데 아직도 입원 해 계신단다. 오랜만에 얼굴 보면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 물어봐야겠군.. 생각하면서 아침에 가서 환자 명단을 체크해 봤더니 이름이 없다.

...... 엥?

간혹 우리 과 전체 명단에서 누락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 이걸 어떻게 찾는담... 고민하다가 다른 환자부터 우선 보고 있다가 때마침 밤에 당직이었던 애가 지나가길래 혹시 알아...? 하면서 물어봤는데,

"아, 그분 밤새 돌아가신 것 같은데...?"

부랴부랴 당직 노트를 찾아보니 정말 사망자 명단에 A 씨 이름이 있다.


아이고....

한 달 전 병원에 수술받을 거라 생각하며 걸어 들어오실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을 텐데...  

오전 내내 그분 생각이 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처음 뵌 B 환자분.

내가 환자분들과 첫 말문을 여는 인사가 "간밤에 편히 주무셨어요? "인데 어머나, 이 분 그 대답을 못하시네. 상태가 좀 안 좋으신 것 같아서 담당 간호사 호출해서 물어봤더니, 어제도 그러셨는데 낮이 되니 괜찮아지셨단다. 음... 일단 좀 지켜보자....


오후에 다시 방문한 환자분은 상태가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다. 때마침 면회 시간이라 아내분이 옆에 앉아 계시는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조금 달라서 의료계 일하시냐 물어봤더니 상담사(psychologist)라고 하신다. 환자분은 보아하니 오늘내일하실 것 같은데, 비교적 덤덤하시길래 주욱 경과를 설명해 드리면서

"How are you holding up...? ( 지금 어떻게 이렇게 참고 계세요?) 물어봤더니,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면서 눈물을 터뜨리신다.

17년이나 같이 산 사람이 지금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오늘내일하는데 괜찮을 리가 있나...

 

나는 직업상/성격상/인생살이상 고강도의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일을 곧잘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내면의 솔직한 진짜 감정과 겉으로 나타나는 감정 사이에 벽이 있는 사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을 금방 알아본다. 왜 다 그럴 때 있지 않나... 당장 닥친 현실이 감당하기 너무 벅차고 힘들어서 일단 벽을 두르고 조금씩 조금씩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마주하는...?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직업인 그분도 그런 거 엄청 잘하실 텐데,  그분이 딱 그러고 계신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안 되어서 살짝 만져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들고 끙끙대다 내 그 한 마디에 와르르르~ 쏟으신 것이다. 엉엉 울면서 아 나 원래 잘 안 이러는데 하시던 그분... '그래도' 괜찮아요 하면서 살짝 안아드렸다.  


그리고 그 환자분은 그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십수 년을 넘게 남들의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재난을 도와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인생에 대한 관점이 다른 사람과는 좀 많이 달라졌는데,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하면서 정작 내 인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거 제대로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오밤중에 이불 킥 할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매 순간 수많은 생각과 불안이 스쳐 지나가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내 인생에 좀 너그러워지는 것. 좀 더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볼 수 있고, 지금 당장 뭐 좀 어긋났다고 해서 인생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고, 이렇게 쉬엄쉬엄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고자 하던 곳 언저리에는 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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