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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Sep 23. 2020

Caught off guard.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는...?

영어로 Catch off guard라는 말이 있다.

방심하고 있을 때 딱 걸렸다는 말인데,

오늘 아침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중년의 남성 C 씨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언어장애인이다. 가게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던 중, 암 진단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내가 C 씨를 만난 것은 기나긴 한 달이 넘는 투병 생활의 끝자락이었는데, 그때 이미 의식이 반쯤 나가 있고 의사소통이 힘든 수준이었다. 미국 의료계, 혹은 우리 병원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청

각/언어장애인인 C 씨를 위해서 수화 통역사가 병실 앞에 앉아서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서 수화를 할 수 없는 나에게도 의사소통에 별 불편함이 없었다. 아쉽게도 C 씨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통역사가 점점 필요 없게 되었지만...


C 씨에게는 매번 병실을 지키고 있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누나들이 있었는데, 특히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C 씨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해서 정말 끝까지 각종 검사를 다 했다. 어머니께서 C 씨가 진통제 때문에 의식이 흐려졌다고 생각하셔서 끝까지 진통제도 넉넉하게 쓰지 못하고, 내가 볼 때는 이미 지난주 중순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계신 것 같았지만 어제부터야 드디어 PCA(자가 진통 조절)를 달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소량으로.


너무 상태가 안 좋으셔서 간밤에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아침에 가서 차트를 보니 아직 살아계셨다. 다른 환자분들과 함께 차트를 흩은 후 주욱 돌아 회진을 하며 C 씨의 방 앞에 섰다. 문 앞에 통역사 아주머니가 안 계신다. 어제 나한테 내일 와야 될까 물어보시던데, 이제 안 오셔도 될 것 같긴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원래 C 씨는 언뜻 보면 임종 직전의 사람이랑 잘 구분이 안 될 만큼 상태가 안 좋으시긴 한데 이번에는 뭔가 싸~한 것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두리번두리번하는데 화장실에서 C 씨 어머니가 나오시면서 엉엉 우신다.  


" My  child is gone.... " ( 우리 애가 저 세상으로 가 버렸어요...)


 오열하는 어머니 옆에 앉아 그 순간 온 정신을 모아 할 수 있는 최대의 애도의 말을 하고 나온 후, 그래도 끝까지 의사의 본분을 다 하느라 간호사를 불러 이 분 돌아가신 거 알고 있냐 확인하고 나니 정신이 멍하다. 아,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응급의학을 하면서 정말 무수히도 많은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그렇게 감정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응급의학 시절에 맞이한 죽음들은 드라마틱하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화아악 순식간에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삽시간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편이라 뭘 생각하고 느끼고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끝나고 나도 처음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가던 마음가짐이랑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고 생각했었다 :)   


 그런데 호스피스 완화의학을 하면서 맞이하는 죽음은 응급의학과 시절의 죽음들과는 조금 다르다. 환자분을 더 오랜 기간 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저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나는 그 사람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집은 어딘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지 등등, 특히나 입원 환자의 경우는 하루하루의 생각 변화를 알고 그분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환자분 뿐만 아니라 그 주변 가족들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오랜 기간 알아온 분들이 돌아가시면 내 마음 한구석의 벽도 사부작 부스러져 내린다.


C 씨의 죽음이 이렇게 내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한 것은, 그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아들이라 어릴 때부터 전심전력을 다 해서 보호하셨을 텐데, 그런 아들이 시름시름 앓아가며 눈 앞에서 오늘내일하는 것을 주욱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행여나 자식이 회복돼서 깨어날까 하는 마음에 진통제 손톱만큼 올리는 것도 주저하시던 아주머니셨는데.... 오늘 밤 잠 못 이루고 계실 아주머니의 그 마음에 작게나마 위로가 전해지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가끔 오늘 같은 날은 내가 제정신으로 계속 잘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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