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 뉴욕의사 Sep 30. 2020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옆집 동생 같던 너, D 씨.

    사람은 누구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 기전들을 사용하는데, 내가 잘 사용하는 것 중에 지적화(Intellectualization)라는 것이 있다. 당면한 현실을 당장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우선 감정을 누르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D 씨도 그랬다.




    나보다 몇 살 어린 동생뻘의 D 씨는 올 초 직장암 4기를 진단받고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각종 고전을 벌이시다 우리 병원으로 치료받으러 오셨다. 암에 걸리면 피의 응고력이 높아지면서 혈전이 종종 잘 생기는데, D씨도 다리에 혈전이 생겨서 치료 중이었다. 혈전으로 인해 다리가 붓고 하면서 통증이 심해질 수 있는데 D 씨 역시 그래서 PCA (자가 통증 조절 펌프)를 달게 되었다. PCA를 처음 달게 되면 매일매일 사용량을 체크하면서 용량을 좀 올려보고 이 약이 안 들으면 다른 약으로 바꿔보고 하면서 부작용이 없이 통증 조절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용량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매일 아침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심드렁~하게 대답도 별로 없으셔서 난 처음에는 정말 다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다(여기서 괜찮다는 것은 통증 조절에 국한해서 말한다). 그렇게 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면서 또 1~10까지의 통증 평가 척도를 물어보면 엄청 높은 숫자를 말하셔서, 그럼 통증 양을 좀 올려볼까? 다른 약으로 바꿔볼까? 해도 이래도 그만~ 저래 그만~ 반응이 없어서 날 더러 어쩌라는 건지...  

이건 뭐 의사는 그만두고 내가 당장 돗자리 깔고 앉아서 환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무르팍 도사님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아랫배 쪽이 아프다고 하셔서 "음.. 그래, D 씨는 혈전이 좀 높게 있어서 그럴 수 있죠..."라고 그랬더니 "아, 그래...?" 하면서 그 무반응 철벽남이 살짝 반응을 한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 너 몰랐어? 내가 보여줄까?" 하면서 폰에서 다리 정맥 시스템 그림을 찾아서 보여주면서 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혈전이 있어... 그래서 거기가 아픈 거야...라고 말해줬더니 순간 그 세상 다 산 듯한 매가리 없던 눈이 반짝한다.  그러면서 손에서 폰을 내려놓지를 않는다.


그때 알았다. D 씨는 괜찮은 것도 아니고 자포자기한 것도 아니었던 거다. 사실은 자기 병에 엄청 관심 많고 너무너무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만, 이미 더 이상 현대 의학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젊은 나이에 암 말기 진단받은 것이 너무너무 화가 나지만 그 화를 애꿎은 다른 사람한테 던지기에는 너무 이성적이셔서 화도 내지 못해서 그냥 그렇게 뚱~하게 있었던 거다.


그 날 이후 D 씨는 다시 예전처럼 뚱해졌지만 그래도 대하는 것이 좀 편해졌다. 나도 한 sarcasm (풍자...?) 하는데 그분도 툭툭 던지는 말이 코드가 비슷하셔서 가끔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더 친해졌다. 내 생각에는 저 다리 띵띵 부어서 엄청 아플 것 같은데 용량 좀 팍팍 올려도 될 것 같구먼 물어볼 때마다 굳이 올리지 마라고 하셔서 퇴원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아.. 저러다가 집에 가서 아파지면 조절하기 힘들 텐데... 싶었지만 환자분이 싫다고 하시는데 별도리가 있나.


그런데 그 뒤로 다른 환자분들을 더 보면서 알았다. 말기에 계신 환자분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시다. 정확하게 왜 인지는 여쭈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마약성 진통제가 불러오는 그 나른~해 지는 의식의 흐림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으시는 게 아닐까...






 결국 모든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호스피스 하기로 하고 셋업이 끝나서 퇴원하시던 날, "다시는 너 안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해놓고 행여 내가 상처 받을까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시 상태가 나빠져서 병원에 돌아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또 차근차근 부연 설명을 해 주시던 우리 D 씨. 응 괜찮아 오해 안 해. 나도 응급실에서 일할 때는 환자들한테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어 하고는 집에 가서 잘 쉬라고, 알게 되어서 참 좋았다고 말하고 잘 보내 드렸다.


집에서 편하게 가족들과 잘 쉬고 계시려나...

다리 아픈 건 좀 괜찮으시려나...

내가 뇌 수술하느라 머리 딱 거기만 동그랗게 빡빡 밀은 거 너무 쿨하지 못하다고, 젊은 남자가 그게 뭐냐고, 율 브린너처럼 쿨하게 확 다 밀어버리지 라고 잠깐 대한민국 아줌마의 오지랖 섞인 농담을 웃으면서 해 주었으면 그 급격히 사그라지던 삶에 대한 열정이 조금은 더 오래 타오를 수 있었을까....?



(사진은 Darren Woolridge Photography/Getty image)         

 

매거진의 이전글 Caught off gua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