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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Oct 22. 2020

Put yourself in my shoes.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기.

장장 8년이 넘는 응급의학과 교수 생활을 마치고 다시 펠로우가 되어 종종 뛰어다니는 요즘.

처음에는 시스템을 너무 몰라서 납작 엎드려 지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이제 다시 서서히 콧대가 높아지기 시작하는데...

여유로운 로테이션을 돌다 저녁 콜을 서는 오늘, 마치기 15분 전에 뛰 뛰 뛰~ 거리며 들어온 컨설트.


"어 나 누구누군데 이 사람 호스피스인데 모르핀 PCA 갖고 왔는데 급성 통증으로 입원할 거니까 와서 PCA 오더 넣어".

 뭐 프레젠테이션이 이 따위냐 불끈 끓어올랐지만 나는 우아하고 스타일 좋은 완화의학 펠로우.

깊은숨을 들이쉰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음.. 그 PCA 우리 꺼야? 그리고 호스피스라며? 그럼 호스피스 서비스가 PCA 매니지 할 텐데? 그리고 호스피스 하다 우리 병원 오면  보험 커버가 안 될 텐데? 환자분 그건 알고 계셔? 넌 통증약 뭐 줬는데?


역시나 답은,

몰라. 몰라. 몰라. 모올라. 아직.


음, 그럼 너 알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통증이 심하다면 네가 약이라도 좀 주고 날 부르지...?




나도 응급실에서 10년 넘게 일했기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의 입장은 백번 이해한다. 제한된 정보로 빠른 결정을 내려 워크업을 하고 빨리빨리 입퇴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응급실 의사는 때로는 슈퍼맨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관으로 컨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기초 공사가 덜 된 상태에서 부르는 거, 나 아주 잘 이해한다. 그런데 이 복잡한 미국의 의료 체계에서는 내가 위에서 한 저 질문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저 정도의 상황 파악은 하고 부르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응급의학과 어텐딩 하던 시절 생각하면 저렇게 호스피스 시스템을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라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가서 물어볼래? 했더니 나보고 와서 하란다.


할머니 올 9월 초에 암 진단받으시고 나이가 많으셔서 동양의 문화답게 모든 걸 중단하고 9월 말 호스피스와 함께 집으로 가셨는데... 모시고 온 아들 말씀이, 처음 한 몇 주는 괜찮으시다 지난 한 주내네 아무것도 못 드시고 통증 펌프 매 30분- 1시간마다 써도 당장 쓸 때만 괜찮고 곧 또 비명을 지르셔서 참다 참다 오늘 모셔왔단다. 이대로는 도저히 집에서 관리가 안 될 것 같아서 우선 모셔오셨다는데...


통증이야 머 펌프 세팅만 좀 올려 주면 금방 해결되는 문제인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는 엄청나게 복잡한데, 개략적으로 말해보자면 모든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를 하기로 결정하면 보험 회사는 호스피스를 커버해 주는 대신 대부분의 연명 치료로 분류되는 많은 의료 서비스의 커버를 중단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케어를 호스피스를 통해 호스피스 담당 의사나 간호사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또 여기도 워낙 많은 환자들을 커버하다 보니 환자분/가족분들이 원하는 것처럼 제깍제깍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어서 종종 발생하는 패닉 상황에서 이 분처럼 호스피스를 깨고 나오시면 보험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out of pocket이라고 모든 서비스를 보험 없이 생돈을 다 내야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자본주의 국가 미쿡의 의료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이 걸 생돈으로 다 내다보면 집안 기둥뿌리 뽑히는 건 아주 일도 아니다. 그리고 순간 당황해서 병원으로 모셔왔다 치더라도 다시 호스피스로 돌아가려면 또 보험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그럼 환자분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호스피스 환자를 병원으로 다시 모셔오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인데, 많은 보호자 분들이 이런 세부 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하신다. 나 역시 경우의 수는 제시해 줄 수 있지만 그 환자분이 어떤 케이스가 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참 난감하다.


동양 문화권의 장남으로 임종을 앞두신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려는 마음 백 번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먹지도 못하시고 물도 잘 못 마시면서 고통에 비명을 지르시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마음도 백 번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의 제도로는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환자들을 커버할 수 있는 층이 너무 얇기 때문에 제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환자 가족들에게 떨어진다.  




환자분은 결국 입원을 하셨다. 그리고 내가 PCA 용량을 올렸다.

이 걸로 진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행여 이 아저씨 댁 기둥뿌리 하나 뽑히는 건 아닌지. 아무도 신경 안 쓸 테지만, 여유로운 로테이션 한참 돌던 중이라 상태가 좋고 여유롭게 오랜만에 병원 와서 콜 서는 나는 그런 것도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갓 졸업한 것 같이 보이던 어텐딩 너, 앞으로 이딴 식으로 니 일 남한테 던지려면 부탁이라도 정중하게 하지...? 괜히 응급의학과 망신시키지 말고...?라고 쏴 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프로이니 웃으면서 환자 케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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