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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Oct 30. 2020

20년 만에 돌아온 그곳, 어퍼이스트사이드.   

맨해튼 봉고차 할머니와의 20년 전 그 추억. 

    

       호스피스 완화의학 펠로우쉽은 End of life  care (구글 번역기를 돌려 보았더니 수명 종료 관리라고 뜬다. 오 마이 갓!)의 다양한 스테이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두 달간 홈 호스피스 실습이 있다. 내일 만나게 될 분의 차트를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참 환자분 한 분 한분마다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나랑 생일이 똑같아서 눈에 띈 할머니는 8남매 중의 장녀이신데 당신을 포함한 윗 4명은 성실하고 책임감도 있어서 믿을 만 한데, 아래 4명은 그저 아직도 철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뭘 믿고 맡길 수가 없단다. 이 할머니 연세가 올해 백세이신데, 그럼 철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은 연세가.... ;;;   



    2000년대 초반의 겨울, 나는 뉴욕에 관광객으로 놀러 온 적이 있다. 너무너무 추운 겨울에 눈도 많이 온 맨해튼이었는데, 때마침 타이밍 딱 맞춰 역시 맨해튼에 놀러 와 있던 내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랑 만나서 손 호호 불며 맨해튼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는데, 길에서 웬 호호백발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여든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작고 호리호리한 할머니께서 장을 보고 오셨는지 비닐봉지 몇 개를 손에 들고 계셨는데, 우리에게 오시더니 길이 너무 미끄럽고 무거워서 그러는데 혹시 집까지 들어다 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집이 그렇게 멀지 않다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속으로 할머니가 되면 그렇게 가까운 거리를 저렇게 별로 안 무거워 보이는 비닐봉지 몇 개 들고 가기도 힘든 것인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 거 말로만 듣던 봉고차 할머니- 한 때 저렇게 무거운 걸 들어달라는 수법으로 봉고차로 유인한 후 인신매매를 한다는 썰이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아냐? 한국에서도 안 만나본 봉고차 할머니를 여기까지 와서 만나다니 하는 생각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지만, 할머니가 너무 가냘파서 날아갈 것만 같고 그 가냘픈 할머니가 비닐봉지 들고 가시다 길에서 미끄러지면 크게 다치실 것도 같고, 옆에 내  친구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뭐 설마 무슨 일이야 나겠냐 싶어서 선뜻 그러겠다고 하고 봉지를 받아 들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안도의 화색이 퍼지면서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신 후, 천천히 조심조심 집으로 발길을 내딛으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비닐봉지를 들고 쭐레쭐레 할머니를 따라갔다.  



     할머니 댁은 정말 그렇게 멀지 않았다. 어퍼이스트(Upper East Side를 줄여서 UES라고 쓴다)의 전형적인 아파트였는데, 참 따뜻하고 아늑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할아버지는 먼저 돌아가셨고 할머니 혼자 남아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게 참 적적하다고 하시며 집안 구경을 시켜 주셨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과 집 안에 가득 찬 사진 액자들에서 할머니는 참 사랑받는 인생을 살아오셨음을 알 수 있었다. 따뜻한 차도 내어 주셔서 차를 마시면서 할머니와 좀 더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 얘기도 조금 해드리고, 우리 가족 얘기도 조금 해 드리고, 와서 뉴욕 구경한 얘기도 좀 해 드리고. 뉴요커 할머니께서는 우리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우리에게 어디 어디를 구경하라고 조언해 주셨던 것도 같다. 그러다 시간이 늦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께서는 배웅을 해 주시며 우리에게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한테 자식 참 잘 기르셨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다.



    시간이 20년 정도 지나 나는 이제 그때의 그 동네로 그 할머니 나이 때의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문화코드를 잘 모르던 여행자로 맞이했던 그때는 잘 모르던 이 도시가 이제는 내가 태어난 도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되었다. The eyes cannot see what the mind doesn't know. 여행자에서 어엿한 시민이 된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공감해 드릴 수 있겠지. 한 분 한 분이 들려주실 얘기를 기대하며, 인생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계신 그분들께 내가 조금이나마 한 주먹의 따스함을 안겨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20년 전의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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