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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Sep 06. 2021

뭣이 중헌디.

가을의 어느 날 맨해튼에서 만났던 호스피스 할머니.

    뉴욕이 가을의 절정을 달리는 요즈음은 가가호호 홈 호스피스 가정방문을 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내가 가는 어퍼 이스트사이드는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이며, 워커와 함께 걸어 다니는 할머니들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곳이다. 그리고 이 동네는 유난히 아파트(코업)들이 많은데, 그 아파트 하나하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난 참 즐긴다.

  

    오늘 가는 N 할머니의 집. 예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완치 후 최근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 병원을 갔더니 식도암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후, 집에서 호스피스 관리를 받고 계신다. 원래 방문을 하기 전에 환자에게 미리 전화를 해서 컨펌을 하는데, 같이 가는 간호사 말이 아침에 전화했더니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너 오면 안 들여보내 줄 거라고 하면서 짜증을 내셨단다. 할머니 원래 신경질적이신데,  오늘은 좀 더 심했다고 나더러 같이 가 줘서 참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뭐, 브롱스와 할렘의 응급실에서 단련된 나에게 이런 인생의 말기에 계신 할머니들의 짜증 정도쯤이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쿰쿰한 지하실 냄새 같은 냄새와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인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대부분 집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이런 집이 처음은 아니라 그렇게 놀랍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집은 정말 뭐가 빽빽~히 들어차서 빈 공간이라고는 부엌과 할머니방, 그리고 거실의 할머니방에서 부엌까지 가는 길 정도...? 그리고 자신만의 방에 앉아있던 빼빼 마른 할머니는 우리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만 짜증을 다 내고, 우리 간호사는 그걸 또 진심으로 다 받아주고 있었다. 흠...


 나는 할머니의 거실에 쌓여 있던 물건들과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하나 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록 지금은 먼지 퀘퀘 쌓인 할머니네 댁에 박혀 있지만 스타일이 좋은, 지금 우리 집에 갖다 놔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한 물건들이 꽤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도 할머니, 젊은 시절 어찌나 스타일이 좋으신지, 무슨 영화배우 같았다.  그 와중에 그렇게 짜증을 내고 또 내시던 할머니도 양껏 짜증을 내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셨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때를 틈타 말을 붙여보기 시작했다.


 " 할머니, 아까 제가 저기 거실에 있는 물건들 좀 봤더니 멋진 물건들이 많던데요? "    

 " 아, 그럼 내가 어떻게 모은 물건인데~"

 " 여기 이렇게 숨어 있기는 좀 아깝다, 그죠? 앤티크 샵에 팔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 아, 그런데 일이 너무 많아서... "

 " 아, 그러면 재활용 센터에 전화하면 와서 다 가지고 가는데 전화라도 해 보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냉큼 떨어지는 할머니의 앙칼진 한 마디,

"저 걸 어떻게 그냥 줘. 팔아야지!"





다시금 가을의 문턱에  있는 요즈음, 작년 이맘때쯤 쓰다 말고 서랍에 넣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떠올려  그때  N 할머니.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금전적 이윤을 남기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시던 우리 N 할머니. 그 많던 물건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역시 정해져 있음에도 항상 내일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  그렇게 영원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삽질은 무엇일까.


그럴 때마다 되뇌어 보자.

 Here and now.  


표지 사진은? http://www.srbbc.org/?r=home&c=4/28&p=4&uid=3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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