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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Feb 10. 2021

나의 크라비 1.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무에타이 부트캠프 이야기.  

    200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옹박'이라는 태국 영화를 본 후, 나는 무에타이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토니 자의 그 절제된 움직임에서 나오는 엄청난 파괴력은 그때까지 무술은커녕 생활 운동 조차 잘 하지 않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록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나는 대사는 "내 코끼리 내놔!" 뿐이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ImSDVhW6Aho

옹박의 영상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토니 자는 항상 이런 완벽한 무술신을 보여 준다.      



    십여 년이 흐른 후 2014년, 직장을 옮기는 사이 시간이 남아 한국 부모님 댁에 와서 쉬고 있는데, 쉬는 것도 지치기 시작하자 이 금쪽같은 시간에 뭘 해 볼까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러다 문득 형부가 뜬금없이 추천한 무에타이 부트 캠프를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때까지 마냥 환상과 호기심만 갖고 있었는데, 직접 해 보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장소는 그동안 가 보고 싶었던 태국 남부로 정하고 나의 베프 방콕 토박이 우디 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푸껫은 너무 관광객이 많고 상업적이라 비추고 그 살짝 옆에 크라비를 가 보라고 했다. 지금에야 한국에서도 직항이 생길 정도로 크라비가 많이 유명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았는데, 오케이! 크라비 하고 그 인근의 무에타이 도장을 찾아봤더니 란타 섬에 한 곳이 있어 일주일을 신청하고 주변 숙소를 예약한 후,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태국은 반도라 해안가는 동부와 서부가 있는데 우기에 따라 성수기가 다른데 동부에서는 코 사무이, 서부에서는 푸껫이 유명하다. 크라비는 태국의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데 내가 가는 시기가 우기라 비수기였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덕택에 모든 것이 너무 저렴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 너무 좋았다.  


   비행기와 택시, 그리고 배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나의 무에타이 도장은 동양애는 나 밖에 없고 다 백인 남자들 아니면 한 등발 하시는 백인 언니들이었는데 다들 넌 여기서 뭐하니 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이 레슨을 받았다. 우리 선생님은 몸에 군살 하나 없고 닌자처럼 휙휙 날아다닐 것만 같은 날렵한 몸을 가진 나만한 키의 태국 남자였는데 표범 같은 동물적인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 무에타이 프로 선수로 활동하시다 은퇴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고 계신 우리 선생님께서는 친절하게 펀치의 기본을 알려 주신 후, 핸드랩 감는 법을 알려 주셨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핸드랩을 텐션을 유지하면서 잘 감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나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이거 다 배우기 전에 나 끝날 것 같으니 그냥 샘이 감아주시면 안 될까요? 했더니 매번 수업 전에 차곡차곡 감아 주셨다. 표범쌤 쵝오! 

  

우리 표범쌤이 매 수업 전 친히 감아주신 핸드랩

 

    무에타이의 기본 동작을 배운 후 스파링을 하는데...  혹시 학교다닐 때 배운 뉴튼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 뭐 이런 거 기억나나...? 보통 스파링을 할 때 내가 가하는 에너지를 상쇄하기 위해 선생님도 나를 같이 살짝 후려치는데 내 주먹이 워낙이나 매가리가 없다 보니 선생님의 그 맞에너지에 되려 내가 휙휙 날아가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펀치, 킥을 수백 개씩 하고 돌아오면 온몸이 집단 구타당한 듯 쑤셔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내가 등록한 코스는 부트 캠프라 한 번에 1시간씩 매일 오전 오후 두 번의 레슨이 있었는데 레슨 한 번 마치고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다 정신 차리고 나가서 밥 먹고 오고 다시 레슨 받고 또 누워있다 하루가 지나가곤 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정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집념과 오기의 한국 여자이기 때문에 절대 그만둘 순 없어 꼬박꼬박 레슨을 나갔다. 나중엔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우리 표범 선생님이 레슨 끝나고 나면 요구르트도 사 줬다. 하루에 한 번씩 사 먹는 팟타이를 인생의 기쁨으로 삼으며 그렇게 휴가길에서의 하루는 아주 천천히 슬금슬금 갔다. 어느 날은 레슨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애가 옆에서 코끼리를 몰고 지나가길래, 나 이거 한 번만 타 봐도 돼? 했더니 흔쾌히 태워 주어서 나의 소원이던 코끼리 트렉킹도 해 보았다. 


  이렇게 일주일을 하고 나서 나의 무에타이에 대한 호기심은 10000% 채워졌고,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피피섬으로 떠났다. 자유와 해방감에 벅차올라 수업 등록 전에 맡겨 둔 보증금 찾아가는 것도 잊어먹고...    


To be continued.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태국의 마야 섬. 맨 왼쪽이 우리 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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