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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Feb 12. 2021

나의 크라비 2.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방콕 현지 무에타이 관람기

    방콕으로 돌아온 후 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나의 무에타이 여정의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친구에게 무에타이 경기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때마침 그 날 저녁에 경기가 있어서 좋아라~ 하며 쌩쌩 달려 도착한 무에타이 경기장은 뭐랄까... 가 본 적은 없지만서도 경륜장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다. 곳곳에 종이 조각이 휘날리며 사람들이 판돈을 걸고, 여기저기 소리 지르고 어수선한...  무슨 시장 바닥 도박장 같은 와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는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람한 경기들은 내 생각과 너무나도 달랐다. 우선 선수들이 너무 어려 보였다. 많아야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이었는데 다들 작고 마른 몸매이기 때문에 펀치를 하고 킥을 해도 별로 파괴력이 있어 보이지 않아 뭔가 괴리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토니 자의 화려하고 파괴적인 무에타이를 생각하고 갔던 나는, 생각과 너무 달라 이건 뭐지...? 하고 물었더니 친구 왈, 바보야 그건 다 영화니까 그렇지! 하면서 옹박은 토니 자의 무술 신을 먼저 다 짠 후 스토리를 거기에 맞춘 예술 영화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몇 게임을 보다가, 그 날의 제일 하이라이트 같은 느낌이 드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태국어를 모르니 분위기로 때려 맞추고 있던 내 눈에도 이 선수들 옷은 더 화려하고 경기 전 인사나 음악도 더 시끄럽고 복작대고 해서 뭔가 더 중요한 게임 같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문득 "누가 이길 것 같아...?" 하고 물었다. 파란 팬츠와 빨간 팬츠를 입었으니 청군과 홍군이라고 하자. 별생각 없이 잘 모르겠는데? 그랬더니 눈썰미 좋은 친구는 

 "홍군이 몸이 더 좋고 빨라. 쟤가 이길 거야".

그러고 보니 홍군이 청군보다 몸도 더 좋고 왠지 더 우세해 보였다. 그리고 역시 친구의 예상대로 시작 공이 울리자마자 일방적으로 펀치를 날리기 시작하며 기세를 몰아가던 홍군은 휘청휘청하는 청군에게 마지막 결전의 한 방을 날리고 그 날의 유일한 TKO 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스타디움을 나오면서 친구가 말했다.

 "아까 마지막 경기 있잖아? 맨 마지막에 날린 마무리 펀치. 그때 청군은 이미 그로기 상태에서 휘청휘청하고 있어서 홍군은 아마 그 펀치 안 날렸어도 이겼을 텐데... 참 세상살이 같지 않아? 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어."


나라면 어땠을까...

별생각 없이 보러 간 무에타이 경기였는데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수년이 지난 후 뉴욕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중 뉴욕 타임스에서 태국의 미성년 무에타이 선수들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요약해 보면, 태국에서 빈민층 가정에서 중산층으로의 도약을 위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무에타이 도장에서 훈련을 시킨다. 이들은 집안의 희망을 한 몸에 입고 자라면서 파이터로 자라나는데 그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발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한 선수가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여, 대책 강구가 시급하다는 이야기이다.  

https://www.nytimes.com/2018/12/23/world/asia/thailand-children-muay-thai.html


 그런 뒷 사정을 잘 모르고 무에타이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히 우리나라의 태권도 같은 호신술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갔던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던 수많은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순식간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그렇게 놀랍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그런 걸 모르는 아이들은 좀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맘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표지 사진은 본문의 뉴욕 타임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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