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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Feb 07. 2021

At the End of the Day

결국에 중요한 것은.

    추운 겨울 나의 두 번째 가정 방문 홈 호스피스 로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사이드(라고 말하지만 이 팀은 맨해튼 최 남단의 배터리 파크에서부터 어퍼 웨스트사이드까지를 커버한다) 팀과 일하게 되었는데 사람들 세심하고 쿨 하신 것이 잘 맞아서 좋아라~ 하면서 다니고 있다. 어퍼 웨스트사이드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와 함께 맨해튼의 양대 주거지역인데, 동쪽보다 훨씬 활기차고 사람들도 세련되고 한 것이 분위기가 좀더 젋고 활기차다. 때마침 혹한과 눈폭풍이 쏟아져서 팬데믹 이후로 나의 발이 되어버린 내 사랑 시티 바이크로 이동하다 보면 간혹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바람을 가르며 씽씽 잘 달리고 있다.



     

이번에 만난 분들은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신여성 할머니분들이다. 결혼하시고 애 없이 남편과 알콩달콩 사시다가 사별하고 혼자 사시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 접어드신 할머님들. 요즘에야 딩크족이니 하는 말도 나오고 애 없이 사는 부부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옛날에 이미 이렇게나 앞서가신 할머님들. 그 센스답게 집 안 데코레이션도 너무나 세련되고 지금 우리 집에 갖다 놔도 하나도 안 어색할만한 멋진 가구들이 주인을 잃고 동그라니 집 안에 놓여 있기는 하다. 벽에 걸린 사진들 보면 젋을 때 다들 한 미모 하신 분들이고, 남편 분들 역시 60년대 영화 속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처럼 멋진 분들이시다.

 

     할머님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많은 호스피스 환자분들은 거동을 못하시기 때문에 주로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신다. 그나마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으신 분들은 간병인들이 휠체어에라도 태워서 조금씩 거동을 하지만 정말 말기에 있는 환자분들은 의식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간병인들이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돌려 눕혀 드리고 기저귀 갈아 드리고 하는 게 움직임의 전부이며 24시간 침대에서 보내신다. 이 신여성 할머님들의 아파트는 요즘 다시 유행하는 고풍스러운 70년대 빈티지 가구들이 거실에 놓여 있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 대부분 예술가 백그라운드가 있으셔서 본인 작품이나 가족 작품이다- 들이 벽에 걸려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우리 할머님들은 침대에 누워 계시느라 집 안의 다른 부분들은 잡동사니들이 쌓여가면서 점점 황폐해진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를 지니신 필리핀 출신 F 할머니도 그중 한 분이다. 할머니는 이제 의식이 거의 없으시고 침대에서 24시간 누워서 지내시기 때문에 안타깝게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남아있는 할머니의 삶의 흔적들을 보면 참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사신 분 같다. 거실에 걸려 있는 할머니 사진을 보면 영화배우 뺨치도록 단아한 외모를 지닌 분이셨는데 이태리 출신 남자분과 결혼하셔서 백년해로하시다가 할아버지는 먼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남으셨다고 한다. 자식이 없으셔서 언니의 딸이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같이 살지는 않아서 아기처럼 24시간 카메라가 방에 있다. 간병인 말에 의하면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가족들이랑 종종 타갈로그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신다는데, 진짤까...? 호스피스 계신 환자분들이 종종 이미 돌아가신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말이 아니라서 나도 진짜 궁금하긴 하다.

 

     할머니 거실에 있는 가구들도 너무 분위기 있고, 특히나 푸른색 벨벳 소파 의자 두 개가 너무 예뻐서 나한테 팔라고 하고 싶을 만큼 탐이 날 정도였는데 ㅋㅋㅋ 할머니 한창 거동하셨을 때는 우아함이 흘러넘쳤을 것 같은 이 거실이 구석구석 잡동사니가 쌓이고 하면서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황폐한 티가 많이 났다.

아... 이 집에서 결국 이제 중요한 공간은 할머니 누워 계시는 침대뿐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필요한 것은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침대뿐인가...? 넓은 집도, 화려한 가구도, 다 소용없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심지어 그 침대마저 높낮이 조절이 되는 병원 침대인데 메디케어에서 커버를 해 주기 때문에 무료다.




     그래도 아직은 젊은 나이에 이런 말을 하면 아직은 넌 살날 많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들 곧잘 말하시는데, 열심히 사는 거야 당연한 거고.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을 빼놓고 헛일하면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더더욱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뭘까...?


이미 절반이 넘게 지난 펠로우쉽, 그 다음 스텝을 준비하느라 부산한 내 마음을 붙잡고 슬며시 물어본다.  

 "너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뭐니?"

 "지금 하는 일이 그 가치와 방향성이 맞아?"

  

(사진은 우리 아버님께서 직접 찍으신 오륙도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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