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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Aug 13. 2021

어느 이민자의 죽음.

그리고 홀로덩그러니남겨진그분의 아내.

    봄이 꽃피는 시점에 만난 내 나이 또래의 환자분 K. 

암 진단받으신 지는 꽤 되셨는데 완치 진단받으셨다 얼마 전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셨다. 입원할 때만 해도 멀쩡히 걸어 들어오셨는데 이런저런 검사와 치료를 받으며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입원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무렵 나를 만난 시점에서는 임종에 가까운, 정상적인 대화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행히 헌신적인 가족들이 24시간 옆을 지키면서 간호하셨는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분은 반짝반짝한 눈이 참 인상적이던 그분의 배우자셨다. 거의 보면 맨날 병원에 계시는데 잠은 제대로 주무시는지, 식사는 제대로 하시는지 안쓰러워 말을 한 번 걸어보았다. 


 " 보면 여기 맨날 계시는데, 식사는 제대로 하세요? "


    동양인은 같은 동양인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연다. 남편 가족분들이 다 같이 가게를 하시는데 남편 누나가 가게를 맡아보시고 시어머니가 애를 봐주시고 시아버지와 자기가 이렇게 번갈아서 간호를 한다고 하셨다. 외국인 억양이 남아있지만 영어도 곧잘 하시고, 이미 사회복지사를 통해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시댁 가족과 불화가 생겨 이 분 혼자 사면초가 고립 상태라는 이야기를 살짝 전해 들은 터라 얼마나 마음이 고단할까.. 하는 생각에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았다. 


    또랑또랑 눈에서 총기가 빛나는 이 아가씨, 아니 이 아주머니는 17살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혼자 건너오셨단다. 하고 싶은 공부도 많고 꿈도 컸는데, 이민자의 삶이 너무나도 고단해서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나셨다고 한다.


" 이 사람은 나한테 싫다는 소리 정말 한 마디도 안 하고 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주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집에 가방이 진짜 많은데, 다 이 사람이 사 준 거예요…" 하면서 갖고 있는 가방을 가리키시는 우리 귀요미 아주머니.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해도 남편분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니고 일상생활 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나빠질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하시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 이제 이게 다 끝나면(남편분이 돌아가시면)... 중국에 친정집에 애들 데리고 가서 좀 쉬다 올 거예요. 저도 좀 쉬어야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우리 애들은 저만 바라보고 있는데, 제가 강해져서 굳건히 버텨야죠. Life goes on".  


홀 몸에 이민 와서 혼자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아주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공감이 갔던 그날.  나도 혼자서 이민 왔다고 그래서 너 힘든 거 너무 잘 안다고 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의사의 말에 와르르 무너지며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는 것 너무나도 잘 알지만, 다시 돌아가면 이민 안 올 거라고 하시면서 엉엉 우셨다. 그런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이민사는 어땠나 가만히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게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부서지고 갈라지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간다. 나 역시 이민 오는 줄도 모르고 이민을 와서, 한 10년 간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우왕좌왕 떠밀려 떠내려가듯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며 그렇게 달라진 내 인생에 어느덧 적응하여 이제  '이민자'라는 단어는 내 정체성의 아주 큰 조각이 되었다. 

 

    앉아계신 내내 남편 분의 다리를 끌어안고 쉬지 않고 마사지를 해 주시던 그분, 지금은 숨 좀 돌리고 계실까?. 너무도 공감 가던 그 아주머니의 상처를, 나는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도 너무 가팔랐지만 앞으로 더더욱 굽이칠 것만 같이 보이던 그 아주머니의 삶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당신을 공감한다 라는 내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사진은 http://georgiapoliticalreview.com/death-of-an-immi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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