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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윤제 Nov 07. 2022

옥수수밭의 구덩이

7,

 “반드시 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그는 지난 이틀 동안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모르는군요.”

 “그렇습니다.”

 상주는 의자에 올려놓은 굴건을 집어 머리에 썼다. 그러고는 신중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멀리까지 오셨는데 대신 우리 어머니에게라도 절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뭐 지금쯤 두 분이 손잡고 노닐고 있을 테니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은 휴게실을 나와 빈소로 들어갔다. 상주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주춤주춤 빈소로 들어가자 줄지어 앉아 있던 다른 상주들이 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정 앞에 섰다.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여자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영정을 향해 절을 했다. 두 번째 절을 하려고 몸을 숙이는데 콧날이 시큰했다. 머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슬픔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상주가 다가와서 어깨를 안았다. 울음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통곡에 술추렴을 벌이던 사람들이 빈소로 몰려왔다. 그때 그를 잡고 있던 상주가 울음을 터뜨렸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온몸을 흔들며 오열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상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동시에 온몸을 들썩거리며 통곡했다. 곧이어 이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가 빈소를 빠져나올 때까지 한 덩어리로 뒤엉킨 사람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울고 또 울었다.


 담배 생각이 사라진 그는 구덩이로 들어갔다. 삽을 거머잡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부터 삽질은 신중해야 했다. 지금까지처럼 아무 생각 없이 구덩이를 팔 수는 없었다. 그는 먼저 중심부 외곽을 파기로 했다.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다음 중심부를 팔 생각이었다. 삽을 땅에 밀어 넣고 온몸의 힘을 실어 밟았다. 삽이 땅속으로 쑥 들어갔다. 삽을 퍼내자 시커먼 흙이 나왔다. 신선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상의 모든 생명을 거두어들이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의 냄새였다. 그는 한 삽, 한 삽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팔목이 시큰거렸지만, 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삽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야 삽질을 멈춘 그는 구덩이 밖으로 나갔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쌓인 흙더미 위에 털썩 주저앉아 구덩이를 들여다보았다. 서너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깊은 구덩이였다. 그 중심에 무언가 있었다.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소리는 뜨거운 납덩이처럼 구덩이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목이 말랐다. 담배 생각이 또 났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다음 청명한 의식으로 구덩이 중심부를 파고 싶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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