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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윤제 Nov 07. 2022

옥수수밭의 구덩이

8,

곡괭이가 땅을 내리찍는 소리였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삽을 흙더미 높은 곳에 꽂고는 곡괭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곡괭이가 땅을 내리칠 때마다 옥수수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웃통을 벗은 한 사내가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이제 막 땅을 파기 시작한 사내가 곡괭이를 내리꽂고 뒤집는 동작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가 헛기침하자 사내가 그를 흘긋 돌아보았다.

 “굉장히 멋진 곡괭이군요.”

 “그렇게 보이시오?”

 사내가 곡괭이를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한 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사내가 흔쾌하게 허락했다. 곡괭이를 받은 그는 흠칫 놀랐다.

 “물푸레나무도 아니고 탱자나무도 아니군요.”

 “주목으로 만들었습니다.”

 “천 년을 간다는 나무 아닙니까?”

 “맞습니다.”

 곡괭이는 손을 잡는 부위에 얇은 가죽을 감았고 날도 철물점에서 파는 것과 달랐다.

 “날도 다른 것 같습니다.”

 “특수 합금을 좀 섞어서 직접 제작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탄복하자 사내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을 찾는데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한 번 휘둘러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그는 심호흡한 다음 곡괭이 자루를 움켜잡았다. 닥치는 대로 파괴할 것 같은 강한 힘이 느껴졌다. 곡괭이를 치켜들었다가 땅을 내리찍었다. 쿵 하는 소리가 전신을 울렸다. 자루를 당기자 흙덩어리가 뒤집혔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곡괭이를 휘둘렀다. 수만 볼트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짜릿했다. 사내가 다가와서 그의 팔을 잡았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그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내에게 곡괭이를 넘겨주었다. 그제야 자신의 목적을 상기한 그가 사내에게 부탁했다.

 “담배 한 개비만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럽시다.”

 사내가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 물고 그에게도 나눠 주었다. 머리를 맞대고 라이터를 켜자 발기한 성기처럼 우람한 사내의 코가 드러났다. 그 우뚝 솟은 코를 보는 순간 눈먼 여자가 운영하는 선술집이 떠올랐다.     

 황무지를 잠식한 옥수수가 달콤한 냄새를 풍길 무렵 동네 입구에 작은 술집이 문을 열었다. 주인은 눈먼 여자였다. 늘 녹색 옷을 입었는데 나이를 선뜻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서른 정도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예순이 넘었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초저녁에 문을 열고 새벽 늦게 문을 닫는 술집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따금 호기심 넘치는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기괴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돌아갔다. 손님이 있건 없건 술집은 늘 불이 켜져 있었고 눈먼 여자는 늘 무언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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