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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Oct 19. 2015

334,500원

비현실적인 가치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334,500원이 입금됐다네요. 입금처를 골똘히 바라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바쁜 시기였기에 고민하기도, 찾아보기도 귀찮아서 그냥 묻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그 돈으로 저는 밥을 먹고, 물건을 사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계좌에 연결된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니까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준 돈으로 살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건, 그 30여만원을 다 사용했을 즈음이었습니다.

약간 찝찝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다 싶었습니다. 어차피 돈이라는 거, 어찌 왔다 가는지 모른 채로 흘러가기가 일쑤였기 때문이죠. 여기저기 찍힌 숫자들은 얼마를 사용했고, 얼마를 사용할 수 있는지 말해주지만,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차라리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과 바꾸었던 빈병 무더기가 제게는 더 선명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모른 채 숫자만 세아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죽기 전에 전 재산을 현금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었지만, 그럼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무가치하게 느껴질까 싶어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 와중에 입금의 출처를 밝혀냈고(당연히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었습니다), 여전히 찍고, 긁으며 돈을 사용했고, 남는 돈을 다른 통장으로 옮겼습니다. 숫자가 티 나지 않게 조금 늘었겠네요.

전세가 몇억이니, 차 값이 몇천이니 하는 세상에서 지금껏 모은 돈은 뭔가를 하기에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 그래서 더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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