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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Oct 01. 2015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비릿한 비냄새 찾아와 인식하지도 못한 기억들을 끄집어 늘어놓는다. 그 카페가 아니라, 그 음식이 아니라, 빈번하게 찾아오는 날씨에 엮인 추억을 갖고 산다는 것.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빗방울이 그려내는 동그라미 파문들이 비오는 내내 나를 떠나지 않는다.

우산을 펼쳐들고 빗속으로 들어간다. 온갖 사물은 채도를 잃고 단지 비에젖은 녹색만이 희미한 빛을 발한다. 가느다란 빗줄기와 뿌연 물안개가 끝없는 아득함을 발 앞에 펼쳐놓는다. 익숙하고도 생소한 그 무채색의 광경앞에 모든 추억은 선명하고도 아련하게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그리운것이었던가, 덜어내야하는것이었던가, 간직해야하는것이었던가, 잊어야하는것이었던가, 해야만하는것이었던가, 그럴수밖에없던것이었던가

지난 날, 수없이 고민하고 답을 구했던, 그리고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들에 말문이 막힌채,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를 피해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그 날에도 그랬듯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다. 무엇때문에 괴로워 했는가 물어봤더니 어쩔 수 없었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비가 그친 것 뿐이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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