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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Feb 29. 2016

너를 그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18. 눈 내리는 베를린

 베를린 필하모니 건물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무료 점심 연주회가 열린다. 30분 전쯤 도착했지만 이미 자리는 만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작은 공연장 위의 공간도 사람들로 빼곡하다. 공명이 좋은 홀 위로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울린다.

14.12.30, 베를린, 필 하모니

 연주자들이 들어오고, 미세한 떨림이 하나로 이어지며 튜닝이 진행된다. 서서히 침묵이 찾아오고 누군가의 기침소리는 메아리친다. 짧은 눈빛 교환, 턱이 살짝 들렸다 떨어지자, 크게 요동치는 7개의 활이 정확하게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팔에 있는 솜털이 일순간 곤두선다.

14.12.30, 베를린, 베를린 돔

 연주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가 어찌나 크던지, 회색 하늘마저도 하얗게 물들이며 내리고 있었다. 제국 의회 의사당 앞 광장도, 베를린 돔 앞 광장도,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하얗게 쌓였다. 페라가몬 박물관 입장을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베를린 돔을 스케치했다. 내 뒤에 서 있던, 보라색 벨벳 모자를 쓴, 너를 그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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