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Frame Mar 26. 2016

그릴 것이 너무 많았다

#21.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에서

1월의 프라하는 꽤나 추웠다. 무채색으로 기억되는 프라하 중앙역을 나서며 목도리를 고쳐 맸다. 얼마 전 눈이 내렸는지 응달진 곳에 때 묻은 눈이 쌓여 있었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사이로 고인 물이 캐리어로 튀어 올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심심하구나. 두리번거려봐도 좁은 골목 사이로 또 다른 벽이 보일 뿐이다. 구글맵에 의지해 4인치 액정에 시선을 고정하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터벅터벅 숙소로 향했다.

15.01.04, 프라하,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건물들이 점차 낮아지고 파란 하늘이 넓어진다. 도시는 작았고, 가볼 만한 곳은 고개를 들어 확인할 수 있었기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4인치 액정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알록달록한 프라하가 눈에 들어왔다. 카를교 난간에 기대어 프라하성을 스케치했다. 색연필을 바꾸어가며 빛바랜 지붕을 채색했다. 같은 색은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같은 색으로 칠할 수밖에 없었다. 더 오래 머문다면 시간이 그려낸 저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쉽게 카를교를 떠나지 못하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15.01.04,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그릴 것이 너무 많았다. 아니 그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려야 할 것이라는 건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이 아까워 어쩔 줄을 몰라 했으니, 프라하에서, 마주치며 미소 짓는 눈앞에서, 성당 앞 광장에서, 골목 앞 길어지는 그림자 앞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나.

매거진의 이전글 '지잉'하고 국경을 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