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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Apr 20. 2016

오랜 시간 연마된 것들

#23. 비엔나,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어쩌면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빈이라 불러야 할지, 비엔나라고 불러야 할지 확신이 없어서 였을까. 아는 것도 없었고 특별한 기대도 없었다. 프라하에서 다음 행선지인 스위스로 넘어가는 적당한 기차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잠깐 들렀다 가지 뭐 했다. 새까만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눈송이 아래로, 짐 가방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후두둑거리는 눈소리를 들으며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15.01.06, 비엔나, 쉔브룬 궁의 장식

빈이든, 비엔나든, 그 다음날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날 내린 눈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쏟아지고 있었고, 도시 전체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쉔브룬 궁의 화려한 장식보다도 아름다웠던 그 정원. 사박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시내의 전경. 슈테판 성당의 알록달록한 모자이크를, 너를 닮아 반짝거리던 미술사 박물관의 작은 대리석 조각을 나는 기억한다.

15.01.06, 비엔나, 3일 교통 이용권

지하철을 탔다가, 버스를 탔다가, 트램을 타고 링슈트라세를 빙글 돈다. 대부분의 도시는 강이 흐르고 있다. 고집스럽게 옛 외형을 유지한 강 이쪽의 풍경과 고층건물이 즐비한 저쪽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그 사이를 달려가는 나는 어디쯤 속해있는 걸까. 교차로를 지나며 느긋한 트램이 살짝 덜컹거린다.

15.01.06,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

아아, 그리고 마침내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 공연 관람. 난생처음 보는 발레 공연이 비엔나라니. 바이올린의 현 위에서 뛰노는 듯, 지휘자의 손끝에 매달려 있는 듯, 체중을 느낄 수 없는 무대에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그들의 노력에, 내가 받은 감동에 마땅한 값을 치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양손이 얼얼 하도록 박수를 친다. 도시와 사람, 오랜 시간 연마된 것들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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