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 한판승
2월.
2월은 늘 마음이 분주하고 불안한 시기다. 곧 신학기가 시작될 텐데, 지난 기초학력평가 시험을 치르고 나니 곳곳에 구멍이 산재해있다. 그 구멍을 메우려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준 과제를 소 닭 보듯 바라볼 뿐이다. 그저 빨리 해치우고 유튜브나 게임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다. 정작 시급함을 느끼는 건 나뿐.
"이걸 놓쳤네... 분명 학기 중에 같이 했는데... 이게 또 안 되네... 큰일이다."
걱정이 꼬리를 물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놀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공부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은 끝이 없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학기 중에는 주말에만 가능했던 게임을 방학 동안은 평일에도 허용하되, 엄마가 회사에 있는 동안 공부하고 확인까지 완료하면 하도록. 아이들은 신이 났다. 특히 첫째는 게임할 생각에 얼굴이 환해졌다.
출근 전, 아이들에게 약속을 다시 상기시키며 집을 나선다. 과연 오늘은 아이들이 약속을 지킬수 있을까?
나는 집을 나서기 전 항상 셋톱박스를 해제하고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인터넷이 차단되면 공부하기 싫더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멍하니 공상의 세계로 빠질 수도 있다. 그렇게 심심해져 봐야 스스로 생각도 많이 해보고, 자신이 뭘 잘할 수 있는지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셋톱박스를 다시 연결하고 태블릿을 켜서 영어 화상 수업을 준비한다. 가끔 너무 바빠서 깜빡하고 나갈 때가 있는데, 그날은 어쩐지 큰아이의 표정이 다르다.
'어? 태블릿 PC에 비밀번호도 걸어뒀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알고 보니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었다. 공부한 것을 가져오라고 하니 하기 싫다며 떼를 쓰고,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태블릿 사용 기록을 확인해 보면 역시나. 알록달록한 그래프가 아이의 활동을 증명하고 있다. 허락 없이 게임한 날은 일주일 동안 사용 금지. 철저한 디지털 디톡스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셋톱박스는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뭔가 달라졌다. 큰아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출근 전, 연결 해제를 깜빡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큰아이는 태블릿을 하고 있다고 자백했다. "지금부터라도 하면 안 돼. 만약 사용 기록이 남아 있으면 일주일 금지야."라고 경고하고 집에 돌아왔다. 확인해 보니 큰아이의 태블릿은 멈춰 있었지만, 작은아이의 태블릿에는 사용 흔적이 남아 있었다.
큰아이는 "같이 했다."고 했지만, 뭔가 수상했다. 둘째는 원래 FM 스타일. 허락 없이 뭘 하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라 이상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자기는 책만 읽었다."고. 그런데 다시 캐묻자 결국 오빠가 자신의 태블릿을 사용했다고 실토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혹시나 싶어 어제 기록까지 확인해 보니, 무려 7시간이나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제는 분명히 연결 해제해 놓았는데… 알고 보니 큰아이는 내가 셋톱박스를 어디에 숨기는지 알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하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익혀둔 것이었다.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분노가 끓어오르고 결국 잡들이까지 시작됐다. 돌아보면 훈육이 아니라 화풀이에 불과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 내 모습이 더 속상했다.
아마 아이와의 디지털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디지털 기기를 절제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이 거북이 레이스는 진행 중이다.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게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