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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일에 대한 단상

햇병아리의 사회생활

by 새벽하늘 Dec 29. 2024

이를 어쩐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한 순간의 실수로 두 사람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Kate가 거세게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바닥에 툭 던져 넣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 100만원 해요? 저번주 토요일에 일했던 돈 안 줘도 돼요. 필요 없어요." 그 말을 듣고 Zen은 얼음장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네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복도에 울려 퍼질 만큼 문을 콱 닫고는 마치 카레이서인 양 굉장한 굉음을 내며 차를 끌고 나가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오늘부터는 없던 일이 되었다.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됐다. 의도치 않은 나의 말이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회사일은 그렇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


약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올해부터는 이직을 하여 지자체 영어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벌써 떡국 먹고 한 살 더 먹을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일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실수를 할 수 있는지 나 조차도 신기할 지경이다. 그리고 외국인과 함께 일하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 같다. 10년 넘게 일하신 팀장님은 새삼스레 느껴지지도 않으실 것 같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고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었던 나는 사무실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컴퓨터를 켜고는 오늘 안에 보고서 작성을 마쳐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Kate가 말했다. "이거 빌려가도 돼요?" 잠깐 팀장님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다음 주 월요일 꼭 갖다 준다는 간절한 Kate의 말에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선 이거 안 들려주면 Zen한테 혼나요. 꼭 가져다줘야 한다고 재차 3번을 말했고 걱정마라며 안심시키듯 말했다. 입구에 잘 꾸며진 가짜 나무줄기 2개와  LED 촛불 몇 개, 그리고 펄이 잔뜩 뿌려져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선물상자 몇 개도 들고 갔다. 그래 돌려준다고 하니까 별 문제없을 것 같다며 혼자 생각했고 묵묵히 앉아서 일을 하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운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새로운 주가 시작 되는 월요일 아침 Zen의 목소리는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시리고 서늘했다. 

"Kate한테 밖에 장식된 거 가지고 가라고 했어? 그거 총책임자인 내 허락도 없이 주면 어떡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전화했어야지. 내가 진즉에 얘기하지 않았어? 지난 60만원짜리 핼러윈 물품도 들고 갔다가 못 찾겠다고 돌려주지 않은 거? 그리고 글루건 같은 작은 것들도 몇 개만 빌려간다고 해놓고는 여러 개가 사라졌고 걔가 왔다 가면 물건들이 없어. 물론 돌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아는데 정신없이 살아서 어디다 두고 다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내 머릿속에 하얘졌다. 아뿔싸. Kate가 식당을 운영 중이라 오늘 안 가지고 오면 식당으로 찾으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말이다. zen은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Zen이 다른 원어민 선생님을 통해서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Kate가 옆에서 물품을 가져가려고 Zen에게 전화해 달라고 말했었나 보다. 이번행사에 쓰고 버리는 물건 있으면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이다. Kate의 의도를 꿰뚫어 본 Zen은 주고 싶지 않아서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랬는데 아무런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내가 오케이라고 말했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Zen은 Kate에게 톡을 보냈다. 내 허락도 없이 가지고 갔냐고 언제 가지고 올 거냐는 딱 두 문장의 말. 그러고 나서 1시간 뒤,  Zen의 폰에서 불이 났다. Kate가 수십 개의 톡을 연속으로 보냈다. 나 지금 화났다고 안 돌려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Ann한테 허락받았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간에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리고 미안해 가져다줄게 딱 두 마디면 되는데 일을 키우고 있는 Kate도 원망스러웠다. 아뿔싸. 하루종일 마음이 심란했다. 제 아무리 그간 Kate의 말과 행동에 신뢰감이 바닥을 쳤다 하더라도 내 한마디의 말이 놀랍도록 큰 파장을 끼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가 금이 가 있었는데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급속적으로 끊어낸 계기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의도치 않았던 말이 표면적으로 좋아 보였던 두 사람의 사이를 이그러뜨리고 단절시킨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 내 편이 아니더라도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회사일은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선 안된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하는 지난 2년여의 학교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랬던 걸까? 이렇게 또 회사생활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이것을 반복되면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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