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의 육아일기
아빠가 2017년 조기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며 가족들이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 가족 모두 올해는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나는 건강하면 자신 있었고, 매년 특수부서 근무자로 건강검진을 받아왔던 터라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언니의 성화에 2019년 3월, 37살에 처음으로 종합검진을 받았다.
어두컴컴한 조명 빛 아래 침대에 누워 초음파 검사를 시작하며 갑상선, 유방, 복부 자궁 등을 차례로 초음파를 보기 시작했다.
“ 환자분, 자궁근종 있는 거 아시죠? ”
“ 네?, 몰랐는데요? ”
“ 이 정도면 증상이 있었을 텐데요? 생리양 많지 않았아요? ”
“ 음... 그냥, 보통이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 추가로 정밀 검사해보셔야 해요”
“ 네...”
대수롭지 않게 자궁근종 데 뭐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 다독이고 남은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끝으로 종합검진을 끝내고 2주 뒤 검진 결과를 통보받았다. 빠른 시일 내에 부인과 진료를 받으라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부인과 병원을 예약했다.
“ 환자분의 자궁근종 위치는 수술을 해야 해요”
37살, 미혼인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오면서 떠오른 엄마 얼굴.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막내딸인 나의 결혼을 강력히 원하셨던 엄마였는데, 결혼도 안 한 내가 자궁근종 수술을 한다고 하면, 엄마의 달콤하지만 피나는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게 뻔했다.
언니와 의논 끝에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혼자 씩씩하게 수술하고 회복하며 1주일 병원 생활 후 퇴원했다. 수술 후 통증보다는 한 달 병가를 받아 14년 만에 꿀맛 같은 휴식 보내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실밥을 뽑으러 다시 찾은 병원.
“ 환자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이건 한국말이 더 어려워요. 영어로 STUMP입니다. 쉽게 경계성 암이에요. 이 암의 치료방법은 자궁적출술뿐이에요. 불안하니까 미리 암 조직을 제거하는 게 치료이자 완치인 거죠.
환자분... 아직 미혼이시죠... 결혼 계획 있으세요? ”
“... 네에? 암... 이라고요... "
믿기지 않는 내 앞의 현실에 힘없이 눈물만 흘리며 진료실을 나왔다.
왜 하필 나일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현실을 부정했고 나 자신을 원망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걸, 참지 말고 양보하지 말고 더 이기적으로 살 걸, 가슴이 답답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고 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엄마. 수술도 비밀이었는데... 암까지 걸렸다고 하면... 진짜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휴우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병원 가기 전과 똑같았지만
나를 둘러싼 공기와 주변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변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려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구나.
그래, 괜찮다. 괜찮다. 수십 번을 중얼거리며 나를 달래줬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부정했지만 차츰 받아들여지게 되고 나의 삶의 시계에 타이머가 맞춰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시간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해야지 했던 미뤘던 일들을 종이 위에 적기 시작했다.
그중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건 엄마가 되는 거라는 걸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