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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Aug 31. 2022

1박 2일, 캠핑의 맛

- 몸은 힘겨운데 포기할 수 없어

대부분의 여행이 그러하듯이 캠핑도 시작은 예약부터다. 인기 좋은 캠핑장은 예약 오픈 시기를 잘 노려야 할 정도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캠핑장은 대체로 비슷하다. 매너타임을 잘 지키는가,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청결한가 등인데 캠지기가 얼마나 꼼꼼하고 부지런한가에 달린 경우가 많다. 물론 최신 시설(예를 들어 개별 화장실이나 개별 샤워실)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경우 비용도 1-2만 원 올라가므로 꼭 최신 시설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기에 초등학생용 놀거리(보통 방방이, 여름엔 수영 가능한 곳)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덧붙여진다.

얼마 전 주말엔, 우리 아이보다 한 달 정도 늦게 태어났지만 한 살이 어린 친구와 같이 캠핑장에 다녀왔다. 무척 청결하고 수영장이 있을 뿐 아니라 집에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기 때문에 올해만 벌써 3번째 방문이다. 꽤 인기가 높은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해 둬야 한다. 다만 지난 주말엔 비가 오락가락하는 최근 날씨 때문에 캠핑장이 조금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작 주말 동안 날씨는 무척 좋았다. 

원래는 금토일, 이렇게 2박 3일로 예약했지만 금요일에 퇴근하고 밤에 텐트치는 게 싫어서 가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하룻밤 캠핑 비용을 날린 것이니 아깝다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금요일 밤에는 편하게 쉬고 싶었다. 금요일 저녁에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박 2일로 예약을 하면 1시 입실이다. 그러면 땡볕에 텐트를 쳐야 하는데 그러기는 또 싫었다. 조기 입실을 허락하는 캠핑장도 있지만 여기는 철저하기 때문에 그냥 속 편하게 2박을 예약한 것이다. 

캠핑장비를 차에 싣는 것은 남편 몫이다.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크기의 캠핑장비를 실어야 하는, 일명 테트리스를 해야 하는데 자신만의 원칙과 경험을 가지고 움직이므로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세면도구나 여벌 옷, 음식 등을 챙긴다. 남들은 캠핑 때 주로 고기를 구워 먹지만 우리는 최근 간단히 꼬치구이와 어묵 정도를 먹는다. 유일하게 고기를 즐겼던 남편조차 최근에는 예전만큼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한 술과 안주 그리고 아들을 위해 떡볶이와 설렁탕도 챙긴다. 사실 내가 하는 짐싸기는 금세 끝난다. 대신 남편의 테트리스는 1시간 넘게 걸린다. 캠핑 장비가 1층과 2층에 나뉘어져 있어 그런 것도 있다. 한곳에 모아 놓았으면 좋겠지만 1층 창고와 2층 베란다가 모두 고만고만하게 작아서 어쩔 수가 없다. 

이번 출발은 계획보다 다소 늦었다. 앞에서 말한 아들의 친구(같은 동생)가 우리 사이트에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걔도 외동이라 같이 놀고 싶었을 거고, 아침이면 온다더니 오지 않으니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해보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반가워 하던지. 우리 아이도 당장 수영복을 갈아입겠다고 성화다. 우리 가족끼리만 캠핑장에 가면 텐트를 치는 동안 혼자 앉아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그것보다 얼마나 즐거운 모습인가. 캠핑장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도 곧잘 사귀고 잘 놀지만, 도착하자마자 어울려 놀기는 쉽지 않다. 친구와 같이 오면 이런 점이 참 좋다. 부랴부랴 차 안에서 수영복을 갈아입히고 수영장으로 보내 놓았다. 어제 도착한 그 집 아빠가 아이들 옆에서 지켜봐주고 있으니 우리는 편하게 짐을 내리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보통 간단하게라도 잠자리와 살림살이를 꾸리는 데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번에는 텐트를 치다가 너무 배고파서 집에서 싸 간 옥수수 하나씩 먹고, 또 텐트를 치다가 너무 더워서 아이스커피 사 먹고 하다보니 좀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일을 다 마무리하니 원래 땀이 많은 남편의 런닝이 몸에 달라붙어 있을 정도였다. 딱 그때쯤, 그러니까 2시간 정도 신나게 놀고 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가 고파진 아이가 돌아 왔다. 남편과 함께 샤워장에 가고 나는 간단히 점심을 준비한다. 짜파게티가 갑자기 먹고 싶대서 매점에서 사다 끓였고, 원래 준비한 짜장떡볶이도 만들었다. 별건 아니다. 레토르트 짜장소스에 떡을 버무렸을 뿐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아이의 친구(같은 동생)가 텐트로 놀러 왔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같이 먹으며 땅따먹기 게임을 한다. 이 아이들의 놀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난 구석이 있다. 생일도 그렇고 덩치도 비슷한데 (심지어 동생인 아이가 더 크다.) 형과 동생이라는 거리두기가 잘 이루어진다. 무슨 말이냐면 동갑내기 친구들 사이에서는 더 발전될 수도 있는 갈등 상황이 안 생긴다는 뜻이다. 형이라서 조심하고 (혹은 봐주고), 동생이라서 조심하는 (혹은 봐주는) 게 있다보니 참 잘 논다. 보통 동갑 친구들과 마실을 하다보면 잘 놀다가도 가끔 언성이 높아지거나 한쪽이 예민하게 굴 때가 있는데 이 아이들은 그런 게 없다. 둘 다 외동 아들이라 성향도 비슷해서 이 집 식구들과 캠핑을 오면 두 가족 부모들이 모두 대만족하게 된다. 

2차 수영을 하러 둘 다 가버리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나는 그저 수영장 근처에 앉아 소설책을 읽으면 된다. 이 정도면 주말에, 호사가 따로 없다. 게다가 남편과 교대를 하고 나서는 아예 텐트에 돌아가 보지 못했던 우영우 마지막회를 시청했다. 이런 맛에 캠핑을 온다.


한여름이니 오늘은 장작불은 생략했다. (사실 불을 피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이바다를 올려놓고 저녁을 간단히 먹으니 한결 가볍긴 하다. 불멍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친목의 시간이다. 저녁을 먹은 후 2가족 식구가 모두 우리 텐트에 둘러 앉았다. 우리가 사 온 연태고량주를 사이다에 타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피곤해진다. 그때쯤 매너타임인 10시 반이 다가온다. 그 이후는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건 금지고 텐트 안에서도 가급적 조용히 해야 한다. 수영을 몇 시간씩 했기 때문에 아이도 금방 잠이 들었다. 


그렇게 별일없이 평화로운 밤이 지나가고 아침 8시쯤 다시 캠핑장은 활발해진다. 사실 우리 텐트 옆 사람들이 7시부터 떠들어서 아침에 일찍 깼지만 계속 텐트 속에서 밍기적거렸다. 캠지기가 아직 매너타임이라고 주의를 줬지만 캠지기가 돌아가니 다시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별별 사람이 다 오는 캠핑장이므로 저 정도 비매너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이는 또 다시 아침 수영을 하러 간다. 우리는? 이제부터 짐 정리를 한다. 퇴실 시간이 12시이므로 10시부터는 준비를 해야 한다. 어제 오전에 풀었던 짐을 다시 하나씩 싼다. 테트리스도 다시 시작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원래 있던 곳에 풀어 놓아야 한다. 집에 돌아와 짐 정리를 마친 남편은 3시간을 내리 잤다. 

이런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 집을 나가 고생인가 싶다는 거다. 편안한 숙소로 여행을 가면 될 일을 왜 맨바닥에서 자느라 짐을 싸고 풀고 다시 싸며 애쓰느냐고 말이다. 글쎄, 이것은 마치 기본적인 욕구를 내 손으로 만들고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서 해 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원하는 곳에 집을 짓고 잠자리와 부엌 살림을 구성해 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딱 그 만큼의 정도로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꾸리고 생활을 해 보는 것이다. 딱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간혹 비싼 장비, 화려하고 예쁘게 꾸미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그 사람들이 그만큼 할 수 있으니 그런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보면 난민캠핑이라 부를 정도로 필수 요소 중심이다.


평소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삶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대로 집을 짓기는? 더 어렵다. 하루 혹은 이틀이라도 캠핑장에서는 누구나 비슷한 크기의 땅 덩어리에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 내 손으로 짓고 내 손으로 정리하는 삶을 체험하는 것, 그게 바로 캠핑의 진짜 맛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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