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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Jul 05. 2023

파레 정복기

48세의 피아노 배우기

‘도미솔’만 주로 나오다가 오늘 ‘파레’가 자꾸 튀어 나왔다. 당황한 손가락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곳을 헤맨다. 게다가 음표 4개가 3개로 바뀌기까지 한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박자 감각이 없었나.


월요일마다 아이와 함께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간다. 오늘까지 네 번 갔으니 이제 막 한 달이 되었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오다가 설득에 겨우 성공했는데 그 조건 중 하나가 나도 같이 배우는 거였다. 그래서 학원이 아니라 당근을 통해 만나게 된 개인 레슨 선생님의 작업실로 찾아가고 있다.


어렸을 때 악기를 배우지 못한 게 늘 아쉬웠다. 막연하게 악보를 잘 볼 줄 알고 악기 하나쯤은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 배워보려고 시도한 적은 있는데 끈기있게 성공하지 못했고 남들처럼 어렸을 때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학원 비슷한 곳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시골이기도 했고 당시 엄마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는 것 외에 뭘 더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다른 시골 분들과 달랐다. 열성적으로 학교에 오고가며 학부모 역할을 했고(지금으로 따지면 학부모 운영위원과 비슷하려나) 밭일과 농사일을 시키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지원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부터는 천안이나 공주로 보내 소위 유학을 시켜주었다.


그런 우리 집 4남매 중 유일하게 학원에 다닌 건 우리 언니였다. 그게 바로 피아노 학원이다. 말이 좋아 학원이지 사실 옆동네 교회 반주자가 자기 집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며 돈을 받는 작은 교습소 같은 곳이었다. 엄마가 언니를 그곳에 보낸 건, 혹시 언니가 공부를 못하면 교대에 보낼 계획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날 정도로, 엄마는 자식들 공부에 욕심이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은 결국,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를 들여오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직도 엄마와 피아노를 사러갔던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언니 피아노를 사는데 왜 나를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한참 타고 간 읍내 피아노 대리점은 그야말로 신기한 곳이었다. 처음 보는 피아노가 여러 대가 있어서 그 자체로도 놀라운데 엄마와 상담을 하면서 나 먹으라고 오렌지주스까지 내 주었으니 어린 생각에도 그곳은 무척 고급스럽고 우아한 곳으로 여겨졌었다. 그때 생각에도 엄마가 무척 비싼 걸 사나보다 싶었다. 나도 언니의 피아노를 뚱땅거리긴 했지만 언니가 살갑게 나를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피아노는 나에게 그저 가까이 있지만 너무 먼 존재 같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아이 덕분에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 연습하려고 중고로 디지털피아노도 샀는데 마음처럼 잘 안 하게 된다. 아직 많이 서툴고 손가락에 힘이 자꾸 들어가서 손목이 뻐근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면 피아노 배우러 가기 싫다는 마음이 턱밑까지 차 오른다.  (아마 아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그런 티를 낼 수가 없으니 마음을 다잡고 선생님께 간다. 아이가 배우는 동안 나는 옆에서 연습을 하고 내가 배우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게임을 한다. 그렇게 두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정말 아이 덕분이다. 땡땡이 안 치고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어서 고맙단 생각도 든다.


50이 넘은 언니는 아직도 그 피아노를 가지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시골집에 있던 그 피아노를, 결혼하자마자 좁은 서울집으로 끌고 올라온 것이다. 내가 뚱땅거리던 그 피아노, 언니와 언니의 아들딸이 뚱땅거렸을 그 피아노를 너무 쳐 보고 싶다. 내 피아노는 아니지만 그 피아노는 왠지 모르게 엄마 같다. 몹시 만지고 싶은데, 아주 잘 부드럽게 만질 수 있을 때 언니 집에 가야겠다.


그러려면 먼저 파레를 정복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더욱 열정이 돋는 것 같다. 부디 내일은 연습을 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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