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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Jun 21. 2023

공교육 교사지만 사교육을 논해볼까

-윤석열 정부의 진단에 대해

"이 정도면 킬러 문제야, 내도 되겠어?"


요즘 교사들은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검토하기에 바쁘다. 오늘 고등학교 2학년 문학 문제를 검토하다가 아이들이 문제를 어려워하지는 않을지 고민하던 중 한 교사가 한 말이다. 물론 웃어 넘기는 농담이었지만 우리 모두 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마냥 쉬운 문제만 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등급제'이다. 9등급의 체제에서 아이들을 적절하게 줄을 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불리해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수능도 마찬가지다. 쉽게 내면 나쁠 게 없는데 그러려면 9등급 제도 자체가, 백분위나 표준점수 제도 자체가 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입시 문제의 핵심은 난이도가 아니다.


나는 일반적인 도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일반적인 학생들’이란 sky캐슬 같은 드라마에 나올 법한 아이들이 아니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사교육 시장의 특별한, 혹은 비밀스러운 모습은 잘 모른다. 이것을 전제로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하지만 나또한 교사에 임용되기 전 꽤 긴 시간 동안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자녀들도 몇몇 학원에 다니고 있다. 초등학생 때는 주로 예체능, 영어 회화로 시작하고 중학생 즈음에는 영어와 수학 공부를 잘하기 위해 다닌다.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학원도 많다. (나는 일반고 교사인데 우리 학생들 중에 중학교 때 특목고를 준비했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수능과 학교 내신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게 된다.

아, 생각났다. 한때 논술 학원이 사교육에서 붐이었던 적이 있었다. 수능 후 한 달 정도 논술 학원에 등록해 논술 공부를 하는 풍토가 있었는데 그때 학원비가 한 달에 백만 원이 넘었다.(2000년대 초반이었다.)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사교육의 모습이다. 


사교육 시장 근절이라는 말은 명분으로 사용되곤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 고등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대학입시 준비다. 지금은 내신 대비만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많은데 수시 비율이 높은 게 그 이유이다. 정시 비율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면? 학원들은 당연히 학교 내신 준비가 아닌 수능 준비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예전처럼 논술이 입시를 좌우한다면? 논술 학원이 더 많이 생기겠지. 당장 특목고와 자사고를 유지한다는 게 현 정부의 방침이므로 특목고, 자사고 준비 중학교 학원은 날개를 달 것이다.

그러니까 학원이나 사교육 시장은 변화하고 적응할 뿐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명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주장하기 위해 정치가들은 사교육 시장을 악의 근원처럼 말하고, 평소 사교육에 꽤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 부모들은 그 명분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제대로 교육하자는 교사들도 평소 학생들에게 학원을 끊고 공부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교육은 사회의 다른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1등 대학, 2등 대학으로 대학들은 줄이 세워지고, 학과들조차도 줄이 세워지는 이 상황에서 과연 사교육이 모든 악의 근원일까. 부모들의 노동 시간이 과도하니 아이들을 밖으로 돌려야 하는 이 상황에서 사교육에 돈을 쓰는 부모들이 잘못인 걸까?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반응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함께 이뤄야지, 교육만 혁신될 거라고 보는 건 헛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의사, 검사, 변호사 정원을 늘려야 과도한 의대 입시, 로스쿨 입시 경쟁이 사라질 것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기본 소득을 일부라도 보장해주는 것,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것 등등이 교육 문제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사교육을 핑계삼으며 교육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굴지 말라는 말이다. 지금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그 의지가 없어 보인다.

 

'맞춤형'교육을 하겠다지만, '맞춤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교육과정 내 수능’은 너무나도 애매모호하다. 어려운 문제를 내지 말라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다. 쉬운 수능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 시스템을 뜯어고칠 것도 아니면서 그런 말을 던지니 하는 말이다. 또한 정부는 진단 평가를 통해 맞춤형 교육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사고, 특목고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진단 평가는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진단할 수 있을까. 국영수의 성적으로 어떤 ‘맞춤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맞춤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곧 정부의 교육 정책 발표가 잇다를 텐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 과제가 그렇게 하나의 원인만 해결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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