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복이 Jun 13. 2022

도헌이가 날린 펀치

- 나에게도 노안이 왔다.

“7번 김도현” 학기 초라 학생들은 번호 대로 앉아 있었고, 분명 6번 뒤에 학생이 앉아 있는데 출석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7번 김도현!” 약간 큰 소리로 다시 불렀더니 “김도헌인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출석부를 다시 들여다보며 잘못 봤다고, 미안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 당황했다. 다시 들여다봐도 김도현인지, 김도헌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노안(老眼)’이 찾아온 것이다. 행여 학생들이 눈치챌까 봐 출석부 프린트 상태를 탓하며 다음 번호 출석을 이어 불렀고 아주 다행히도 글씨가 잘 안 보여서 헷갈리는 이름은 더 이상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眼]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시절에는 키가 꽤 큰 편에 속해 맨 뒤쪽에 앉았었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서 항상 난감했는데 우리 초등학교에는 안경을 낀 아이가 하나도 없어서 나도 굳이 안경을 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안과에 갔더니 그새 눈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부터 안경을 썼다. 안경을 끼게 되니 세상이 참 깨끗하고 맑게 보여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경을 쓰는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은근한 시선 때문에 마냥 좋지는 않았다. 지금 같으면 안경 쓰는 게 그럴 일이 아닌데 30년 전 시골 중학교에서는 안경을 쓰면 어떤 순번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있었다. 예를 들어 멋진 아이, 노는 아이, 예쁜 아이 등등에서 말이다. 대신 공부하는 아이, 얌전한 아이, 소심한 아이 등등의 프레임을 쓰게 되었다.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프레임은 사실이 되어 나를 규정짓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현실과는 다르게 멋진 아이, 노는 아이,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친구들과, 특히 좀 논다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가면서 안경으로 인한 편견은 사라졌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가서인지 안경을 쓴 친구들이 아주 많아져서 이상할 게 없었다.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안경은 내 삶에 불쾌감을 주는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조금 불편하긴 했다.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것들이다. 누워서 티브이를 볼 때, 라면을 먹을 때, 추운 날 버스를 탈 때, 선글라스를 살 때 등등. 그래서 30대에 라식을 했다. 빛 번짐 현상은 있었지만 지금껏 만족하며 잘 살고 있었다. 눈으로 인한 불편함은 끝, 이라고 생각했다. 빠르면 40대 초부터 노안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주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출석부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물건을 살 때 성분 표시 같은 게 잘 안 보인 건 꽤 오래되었고, 얼마 전부터 카톡을 보낼 때 오타도 늘어났다. 급격하게 안 좋아진 건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서이다. 그걸 나 스스로는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꺼내놓고 싶지는 않다. 카톡 글씨도 너무 크게 키워놓고 싶지 않고, 안 보인다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싫다. 이제 곧 책 보는 것도 불편해지고 아이 손톱이나 발톱 깎는 것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50대 지인들에게 돋보기안경에 대해 물어봐야 하나 싶다가도 아직은 괜찮지 않나 하며 눈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일단 미뤄두고 있다. 사실 나는 노안(老眼)뿐 아니라 '나이 듦' 전체를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싶다. 왠지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는 게 싫다. 특히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아이들과 멀어지는 교사가 되는 게 가장 싫었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늘 주목하고 그런 게 아직 재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별로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버티고 있다.  어쩌면 시력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갑자기 퍽 하고 펀치가 날아왔다. 그 펀치는 7번 김도헌이 날렸다. 나에게도 ‘노안이 왔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다소 날카롭게 반응한 건 여러 번 겪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 50대 교사가 꽤 많으니 이름을 잘못 불러대는 교사가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회의를 할 때 글씨 포인트 10으로 인쇄해 가면 안 보인다고 타박을 하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50대 교사들이 돋보기안경이나 다초점 안경이 불편하다며 썼다 벗었다 하던 모습도 생각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늘귀에 실을 꽂아달라고 부탁하던 엄마나 할머니의 모습도 생각난다.



노안도 결국 노화로 인한 질환에 해당하므로 노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심한 불편을 겪지 않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사례로 노안 치료 수술을 들 수 있다. 상태에 따라 노안 교정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수술의 경우 최소 2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실비 보험 적용 여부가 보험 약관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비용이 꽤 높은 편이다. 굳이 수술 비용 이야기까지 안 가더라도, 상품에 적혀 있는 성분 표시를 지금보다 크게 해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도 큰 글씨 책을 더 많이 출판하고 더 많이 보급해주면 안 되나. 하다못해 학교 출석부 프린트 글자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조금 흐려졌다고 어떤 순번에서 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말이 통하는 사람, 생각이 젊은 사람,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사람 등등에서 말이다. 왜 하필 이름이 노안인가. 나는 늙지 않았는데. 괜히 얼굴까지 마음까지 늙게 만드는 이름이다. 그냥 ‘40대 즈음부터 시작되는 시력 저하’라고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이름이 노안이다 보니 결국 우리 모두 노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노인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말을, 제일 처음 눈으로 실감하고 있다. 어차피 찾아온 노안, 나 역시 덜 불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가장 중요한 건 위축되지 않고 노안이 와서 그렇다고 담담하게 말해서 괜한 오해를 사지 않아야겠다. 당장 말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도헌이에게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도헌아, 이름 잘못 불러 미안했다. 그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선생님이 노안이 와서 그런 거였다. 먼 미래이지만 너도 '40대 즈음부터 시작되는 시력 저하'를 겪게 될 거란다. 그러니까 네가 조금 이해해주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