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말은 그저 잔소리였나요
긴장한 눈빛들이 총 20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서로의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다. 누가 자기를 앞지르기 전에 먼저 치고 나가기 위해 준비한다. 소리 없는 경쟁 중이다. 재빠르게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도 가까이에 둔다. 이 상황을 만든 게 바로 나. 나를 뺀 나머지 10명의 동지들이 모두 그러했다. 지금 읽고 있는 글, 함께 토론하고 있는 내용보다 '그것'이 우선인 듯하다. 그것은 바로 담배다.
20대에는 일주일에 5개 정도의 세미나와 회의가 있었다. 대학 때 시작한 이후 10년 동안 활동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지원단체에서도 일했고 10년 간 함께 한 동지들과 따로 모임도 꾸려가고 있었기에 늘 바쁜 나날이었다. 아니, 바쁜 건 괜찮았는데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가 나를 힘들게 했다. 바로 그 10년 지기들이 모두 흡연자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중 유일한 비흡연자였다. 어려운 책을 읽고 난감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담배가 빠지지 않았고, 지금처럼 건물 내 흡연이 불법인 시절도 아니었기에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메케함이 너무 괴로웠다. 어떨 때는 숨쉬기도 힘들었다. 옷이나 머리에 잔뜩 냄새가 배서 흡연자 못지않게 늘 쿰쿰함을 풍기고 다녔다. 우리는 주로 사회 문제 해결과 실천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조차도 내 문제가 사소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담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고민이었다.
주변 사람이 다 담배를 피우니까 나도 담배를 배워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모두 담배 피우러 나가고 자리를 비워버려 혼자 남은 게 민망했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몇 모금 빨아본 적도 있었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흡연에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흡연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는 다행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을 끊게 해 볼까, 글쎄, 그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20여 년 전 즈음에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하는 문화가 강하지 않았다. 나만 떠들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담배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담배 좀 그만 피우라’로 시작된 나의 요구는 쓰레기 치우기나 시간 약속 잘 지키기 등으로 더 퍼져 나갔다. 피곤한 사람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을 닦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고심 끝에 동시 흡연자를 2명까지만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나의 끈질긴 호소 때문인지, 내 입장을 이해한다며 다들 그 제안을 수용했다. 대신 그 이후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이다. 누가 담배를 다 태웠는지 관찰하다 재빨리 다음 차례를 낚아채기 위해 아예 담배를 손에 들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기도 했다. 줄여보려고 만든 규칙인데 오히려 경쟁이 과열되어 사람들의 모든 신경이 담배로 집중되었다. 이걸 바란 건 아닌데,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 규칙은 종국이(가명)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어느 날 종국이가 군대를 간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1년 정도 더 함께 활동하고 갈 줄 알았기에 우리 모두 당황했고 A선배가 그와 면담을 하며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대화 중에 결정적으로 나를 충격에 빠뜨린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국이의 말은, "수박 잔소리 때문에 입대를 결정했다."는 것. 그즈음 얼굴 표정이 안 좋고 내가 뭐라고 하면 자꾸 대꾸를 해대더니 나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하지만 '그게 그 정도였나, 군대로 도망칠 정도? 나는 그저 핑계 아닌가', '세상에, 그 메케한 연기를 참아가면서 함께 했는데, 내 잔소리 정도를 못 참나' 등등,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황당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비흡연자를 위해 흡연 자체를 금지시켜야 했을까. 그냥 메스꺼움을 참고 견뎌야 했을까. 지금이라면,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흡연을 금지시켰을 것이다. 요즘이라면 그때 그 흡연자들도 건물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때는 둘 다 답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이후 나를 위해서 담배를 더 자제하자고 결론이 났고, 두 개 피우는 규칙은 유야무야 사라졌다. 종국이는? 군대에 갔다. 물론 그 이후 종국이와 관계가 나빴던 건 아니다. 이 문제로 종국이와 대화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냥, 군대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쁜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날카로운 말들 때문에 군대를 간다는 친구가 있었다는 건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에는 한동안 고민이었고,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하면 화나고 억울한 일이 분명하다. 쾌적한 공기를 요구한 나의 이야기가 결국 ’잔소리‘로 치부되어 폄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내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잘못이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말하는 방식이나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전보다 더욱 웃음이 많아지고, 가급적 가벼운 분위기로 의견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유동적으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며 살아왔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까지는) 잔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교직 생활 동안 학생들에게 화를 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실제로도 화가 잘 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무서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을 겪게 될까 봐 그렇다. 담배 문제에서 누구의 입장이 옳은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괴롭게 했다는 게 나를 무섭게 한다. 계속 얼굴을 보고 사는 게 힘든 사이가 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나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더 일찍 대화하고 서로 사과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동료나 학생들에게 잘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혹시 또 그러면 어쩌나, 나 때문에 학교가 싫어지고 나 때문에 전학 간다고 할까 봐. 나는 아직도 그 소리가 나올까 봐 무서운 게 아닐까.
*디스는 당시 많이 피운 담배 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