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봄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달력은 넘어갔지만 학교는 아직 2023학년도라고 쓴다. 2024학년도는 3월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대신 1월과 2월은 이전 학년을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방학이어도 회의와 연수 등이 이어지는 바람에 자주 출근을 한다. 특히 2월 말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 교직원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모든 학교가 숙박형으로 진행하지는 않지만 우리 지역 교육청에서 권장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이것은 내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몇 년 만에 가는 워크숍이니 잘 진행되길 바라며 아이디어를 모으던 중, 마음에 쏙 드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아이돌보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린 경우에는 주 양육자가 숙박 워크숍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돌보미를 고용해, 아이를 동반하되 편하게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해 보자는 게 내 취지였다.
사실 우리 학교 교사인 A는 사정이 있어 아이들을 혼자 양육한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니 부탁할 사람도 없는데 아이 둘을 두고 워크숍을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A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만 해도 교사들의 초등 자녀들이 10명쯤 된다.)
전국 단위 연수에서 아이 돌보미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주변 어느 학교에서도 이렇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참여를 몇 명이 하든 상징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사명감도 들었다. 육아를 함께 책임지고 나누지도 못하면서 마음 편히 일에 집중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생각을 전체 교직원에게 알린 것은 두 달 전쯤이었고, 다른 학교 업무 담당자에게도 은근히 자랑(?)을 하고 다녔다. 많이 퍼져서 양육을 담당하는 엄마(혹은 아빠)교사들이 더 좋은 환경의 학교를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정말 좋은 정책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깨가 으쓱 해지면서도 진작 추진하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 학교보다 젊은 교사들이 더 많은 곳에서는 꼭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커졌다.
그런데 며칠 전 버스 이용 여부, 숙박 여부, 자녀 동반 여부 등을 묻는 사전 조사를 시작하자 일부 교사들이 질문을 가장한 문제제기를 해 왔다. 학교 예산으로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되느냐, 어떤 예산으로 쓰느냐 등등
그래서 아이들 숙식은 개별 부담하되 제반 비용(돌보미 수당, 돌보미 숙식비)은 학교가 댄다고 답했더니 뒷말이 나올까 봐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교 행사에 마련한 프로그램이라 공지를 해 왔고, 그러면 당연히 학교 예산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천형 혁신학교라서 그 예산을 사용하고 혁신학교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짧고 간결한 답장을 보내고 퇴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도 저녁 내내 고민하다 교육청 담당자분께 문의를 했고 그 예산을 사용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은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전체 교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 더 자세히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교육청의 답변도 첨부해서 말이다. 다행히 그 이후 별다른 문제제기는 없었다.
질문할 수 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 질문 및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3명인데)이 모두 엄마 교사들이다. 우리 학교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그중 한 명은 바로 며칠 전 아침에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느라 지각을 했다. (자주 지각을 하는데, 예전에 우리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고민했다. 공정하지 못하거나 평등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하지만 육아와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정, 진정한 평등 아닐까. 게다가 평소 무척 정의로운 시선을 강조하는 분들이라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무리 돌보미가 있어도 아이를 데려오면 마냥 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동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 주변에 사는 부모님께 부탁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10명에 달하는 초등 자녀가 있지만,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건 두어 명뿐이었다.
그래도, 딱 한 명에게 절실하다 해도 이건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앞으로 어떤 문화가 만들어지느냐와 관련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단 학교에만 해당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직장이든 해당되는 문제이지 않겠는가.
출생률 저하와 사회 위기를 아무리 따지면 뭐 하나, 이런 문화가 없으면 애 키우기가 너무 빡빡하다.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육아부담을 떠안은 조부모도 해방시켜줘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 누구라도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