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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Jul 12. 2024

국과수 밴드를 소개합니다

-나는 어엿한 밴드 보컬이 될 수 있을까

'국과수밴드'는 우리 학교 교사 밴드의 이름이다. 작년에 처음 결성되었는데 드럼은 국어, 기타는 과학, 건반은 수학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이 국과수밴드. 작년에 퇴임하신 영어샘이 (곧 퇴직이니 기념 삼아) 한시적 보컬로 합류하셨고 올해 초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소싯적 노래방에서 노래하던 내 모습이 인상에 남으셨는지 기타 치는 과학샘이 제안을 해 왔는데, 나는 또 흔쾌히 승낙했다. 내 실력이 진짜 좋아서가 아니라 재밌을 것 같아서, 그냥 노래하는 게 즐거울 것 같아서 승낙한 것이다. 해 보니까? 진짜 좋다. 바빠 죽을 것 같은 하루 일과여도 지하 공연장에 내려가 1시간 동안(일과 후 야자 시간이 되기 전까지만 연습을 한다.) 밴드 악기 소리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오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일주일에 딱 하루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니다, 아쉽긴 하지만 적당하다. 업무와 육아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호사스럽다. 객원 보컬이 한 명 더 들어와서 요즘엔 연습시간이 1/2로 줄어들었는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축제라 부를 만한 행사, 즉 학교 동아리 발표회가 있는데 작년 그 무대에서 찬조공연을 한 게 국과수 밴드 공연의 전부다. 큰 문제가 없다면 올해도 연말 공연에 끼지 않을까 싶긴 하다. 우리는 매달 두 곡쯤 추가해 연습하는데 보컬인 내가 신곡을 골라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게 참 또 좋다. 어떤 노래를 부르면 좋을지 고민하며 많은 밴드 음악을 듣게 되니 일단 행복하고, 좋아하는 곡을 부를 수 있고 샘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게 또 뿌듯하다. 음색이 안 맞거나 기술이 부족해서 좋아도 부를 수 없는 곡이 있는 건 아쉽지만 곡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까지 내가 골라 연습한 곡은 롤러코스터의 '습관', 브로콜리너마저 '앵콜금지요청'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이제 연습 시작한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이다. 아, 자우림의 '애인발견'도 있는데 이 곡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 베이스 샘이 노래하던 곡을 이어받은 것이다.


처음엔 그냥 그날 노래만 하고 왔는데 다들 열심히 악기를 익히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나만 공짜로 놀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출퇴근 시간에라도 차 안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나아지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가사를 외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베이스 샘이 가사 외우라고 장난스럽게 타박하던 게 이제는 사라졌다. 점점 국과수밴드의 보컬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한 팀의 보컬로서의 길이 아직 멀긴 하다. 사실 베이스 치는 과학 샘은 처음 연습하는 날부터 나에게 전체 밴드 음이 잘 조화를 이루는지 살피라고 하셨다. 그걸 보컬이 들어줘야 한다는데, 나는 너무 막막했다. 원래부터 음악적 식견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그저 좋게 들릴 뿐이어서 뭐라고 평할 수가 없었다. 그저 웃지요.

점점 듣는 귀가 생기겠지 하고 위안해도 되는 건지 늦게라도 악기 하나 배워야 하는 건지 고민이다. 아, 이 밴드 연습 시간을 내기 위해 피아노 수업 듣는 것을 관뒀는데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저 재밌고 즐겁게 참여해도 되겠지, 하면서도 더 잘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내일은 시험 기간이라 일과가 일찍 끝나기 때문에 집중 연습의 날이다. 밤이 되어서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노래들을 한 번씩 불러 본다. 옆에서 숙제하던 아이도 같이 흥얼거린다. 엄마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그래,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국과수의 국2(국1은 드럼샘)로 행복한 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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