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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Jul 12. 2022

그때는 달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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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운동장에 총소리가 울린다. 총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울린다. 우리 학년의 순서가 되면 미리 운동장 중앙에 나가 줄을 맞추고 6명씩 앉아 있다가 순서가 되면 차례차례 앞으로 나아간다. 내 앞에 앉은 아이들이 한 줄씩 사라질 때마다 긴장감은 커진다. 드디어 내 차례.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총소리를 기다린다. 몸을 좀 숙여야 하나 싶지만 얼마나 숙여야 잘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번 달리지만 정작 달리기의 자세를 배운 적이 없었다. 초조한 몇 초가 흐르면 금세 커다란 총소리가 울리고, 옆 친구들은 총알처럼 튀어나간다. 나도 마음은 그랬는데 발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나만 자꾸 뒤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내가 중간쯤 도달했을 때 결승선의 흰 줄은 1등 친구가 멋지게 없애버렸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 건 결승선에서 순위를 매기는 선생님 뿐이다. 

"6등!" 

선생님은 큰 소리로 외친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내가 6등, 꼴찌인지 나도 잘 알고 있고, 지켜보는 친구들도 다 아는데 굳이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시니 창피하고 민망했다. 그리고는 진행을 돕는 교사가 나를 맨 끝 자리로 신속하게 앉힌다. 내가 1,2등 자리라도 탐할까봐 그랬는지 직접 꼴찌 자리로 안내한다. 그리고 1~3등에게 상품을 나눠줄 때까지(나중에는 도장을 손등에 찍어줬던 것 같다.) 나는 거기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럴 거면 1~3등만 남겨놓지, 괜히 앉아서 부러운 얼굴로 앞 등수 아이들을 지켜봐야 했다. 제일 싫었던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의 우열은 운동 능력으로 많이 갈라졌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을 건데 30여 년 전 내가 다닌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피구를 얼마나 잘하냐,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냐가 멋진 아이를 가르는 척도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다 같이 어울려 놀던 시절이라 그랬나보다. 특별한 놀잇감이 없으니 땅에서 몸으로 노는 일이 많아서였다. 마을로 돌아가면 딱지치기, 땅따먹기 등 굳이 운동 신경이 없어도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놀이들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학교에서 대규모로 놀 때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하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 아래 계급이었다. 피구할 때 공으로 누구를 맞혀 죽이기는커녕 늘 초반에 죽어버리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운동회였다.


가을 운동회는 학교 주변에서 벌어지는 최대 축제이자 이벤트였다. 학교 주변 마을 어른들은 죄다 모였던 것 같고, 마을 대표들의 달리기 경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부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선수들이 마을의 명예를 걸고 달렸다. 추수 즈음이니 맛있는 음식들도 많았고 온갖 군것질의 천국이었다. 그래서 큰 잔칫집 같았다. 

그런 잔치 분위기의 끝은 늘 달리기였다. 달리기가 끝나면 상품으로 공책을 나눠줬는데 나는 6년 동안 그 공책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꼴찌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딱 한 번 5등을 한 적이 있다. 내 앞 친구가 넘어졌기 때문이다. 맨날 6등 줄에 앉아 있다가 5등 줄에 앉게 되니 괜히 설렜던 기억이 난다. 혹시 이번 운동회 때는 5등에게도 공책을 주는 게 아닌가 하고 상을 나눠줄 때 기대도 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운동회’라는 이름이 웃긴다. 운동을 하는 모임이라니. 그때 우리는 전혀 ‘모임’같은 성격의 행사를 치른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나를 의무적으로 달리게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각종 매스게임에 참여하니까 달리기를 안 한다고 해서 운동회에서 소외될 일은 없었을 텐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운동 외에도 외모와 성적 등 다양한 것들이 등장했다. 그래서 운동을 좀 못한다고 해서 기죽을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남학생들은 좀 달랐겠지.) 하지만 다양한 기준으로 아이들이 분류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건 아니었다. 그 속에서 등수가 정해지는 건 달리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달리기는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체육 시간이라고 해도 틈만 나면 자습을 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나쁠 때는 물론이고 날씨가 너무 좋은 것도 이유가 되어 자습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앉아서 달렸던 것 같다. 차라리 나가서 뛰는 게 좋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냥 체육 시간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운동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40살 즈음이 되어서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인지 생존 본능인 건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수영도 탁구도 스쳐 지나가듯이 조금씩 배워다 관두다를 반복했다. 능력이 부족하니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데 나는 그럴 만한 의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얼마 전부터 런데이라는 모바일 앱을 깔고 달리기를 하고 있다. 예전엔 몰랐지만 달리기야말로, 특별한 능력이나 실력이 필요없는 좋은 운동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보자를 위한 30분 달리기 코스를 밟고 있는데 7주째에 접어들고 있다. 달리는 내내 일명 ‘런저씨’로 불리는 인공지능 코치의 설명을 들으면서 달리는데, 런저씨는 내게 빨리 달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고 격려한다. 계속 달릴 수 있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구나. 이 달리기는 오로지 나를 위한 달리기구나. 남들과 비교해야 하고, 먼저 도착해야 하는 달리기는 참 싫었는데 지금은 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7주째에 접어들며 10분 동안 연속으로 달리고 있다. 제일 처음 1분을 달렸던 것에 비하면 7주 만에 10배의 능력이 향상된 것 같아 뿌듯하다.


우리 학교 여자 교직원들끼리 달리기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크루’라고 부른다.) 모임 구성원이 13명인데 그 중 누가 달리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달리다가 지칠 때쯤 박수소리와 함께 그 메시지가 들려온다. 다음날 만나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기 때문에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다른 시간에 달리더라도 우리는 끈끈하게 이어진 운동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런저씨가 ‘13등!’ 이라고 외쳤다면 7주 동안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운동에서 오는 쾌감과 성취감이 남는다. 이게 바로 ‘운동회’ 아닐까. 운동하는 모임 그 자체 말이다. 겨루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나 자신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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