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무수히 많았지만 산은 결국 스스로 정상에 다다르게 하는 힘을 지녔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쳐 최고점으로,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등산을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고 싶은 걸까.
1장. 초입
북한산 초입에 섰다. 3일 연휴였기도 했고, 어쩐지 몸과 마음이 답답해져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등산하기에 딱 적당한 날이었다. 북한산이 오르기에 어느 정도인지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집 근처라서 선택했다. 북한산 초입에 들어선 순간부터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기분이 좋아졌다. 멀리서 보이는 북한산 정상이 멀고 높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오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진 않았다.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은 저기구나.’ 묘한 경쟁 심리와 함께 정상까지 올라가고자하는 마음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웬걸,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배가 고팠다. 걸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정상에서 먹기 위해 사들고 온 샌드위치를 흡입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2장. 오르막길
처음엔 함께 산을 오르는 동행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을 올랐다. 맑고 투명한 계곡도 바라보고, 새소리도 듣고, 푸른 나무도 눈에 담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산의 경사가 가팔라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10분 걷다 쉬고, 10분 걷다 쉬고를 무수히 반복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아예 바위에 대(大) 자로 드러누워버렸다. 내 저질 체력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중에는 동행자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산을 오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나를 보며 안쓰러웠는지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격려의 말로 위로했다. 10분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말해주길 바랬지만 그들은 내게 아직 한 시간이나 더 남았다고 귀띔해주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한 시간 반 이상을 걸어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더 남았다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눈앞에 점점 가까워지는 산봉우리를 보니 이대로 포기하긴 싫었다.
다시 맘을 다잡고 나중에는 90도 경사의 돌산을 줄 하나만 의지하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올라갔다. 내딛고 서있는 바위와 절벽은 줄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 여기서 발을 헛디딘다면 난 죽겠구나, 라는 생각에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웠다. 옆에 보이는 ‘추락주의’ 팻말을 나를 더 옥죄었고, 결국엔 울음을 터뜨렸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등산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던 내게 북한산은 내게 울음을 주었다.
3장. 정상
그렇게 눈물 콧물 쏙 빼가며 정상에 다다랐다. 내 눈앞에는 서울 시내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내가 결국 여기에 올라왔구나, 라는 희열을 느꼈다. 산은 어떻게든 내가 정상에 오르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렇게 정상에 오른 기쁨도 잠시, 까마득한 고도에서 나는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가 막막해졌다. 오르는 건 어떻게 올랐는데 내려가는 건 또 어떻게 내려갈까. 그 높이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또 내려가야 할 테니까. 정상의 기쁨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하산에 대한 걱정만이 내 머릿속을 온통 메우기 시작했다.
4장. 내리막길
이제 하산을 시작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가파른 절벽이 더욱 험준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내가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여기서 그냥 죽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기서 무사히 집까지 돌아간다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살아난 내가 못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겹쳤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몇 코스는 눈물 찔끔 흘리며 내려가긴 했지만 일정 구간이 지나니 생각보다 내려갈 만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등산에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어도 힘든 순간을 모두 이겨냈기에 잘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내려가도 내려가도 도무지 산 입구가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내가 이 길을 올라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내려가는 그 길이 지루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나중엔 정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악으로 깡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결국 산행을 마쳤다.
5장. 돌아가는 길
등산에는 오르막길, 정상, 그리고 내리막길이 있다. 정상이 끝이 아니라 내리막길까지가 비로소 등산의 완성인 것이다. 정상을 보며 걷는 오르막길은 내가 곧 저곳에 오르게 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차있다. 힘들지만 결국엔 이 오르막길을 잘 버티고 나면 정상에 다다를 거라는, 나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 사이에 물론 역경과 고난이 있겠지만 그걸 이겨내고 맛 본 정상에 대한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계속 정상에서 머무를 수만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다시 똑같은 길을 내려와야 한다.
내가 내려올 때 느낀 것처럼 오르막길보다는 오히려 내리막길이 더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힘들게 올랐던 길을 내려와야 하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이 내리막길을 잘 견뎌내야만 우리의 등산은 비로소 끝이 난다. 이 마무리를 잘해야만 산을 잘 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오르막길에 오르느라 모든 정성과 에너지를 쏟아 냈을지언정 그만큼의 힘도 내려가는데 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여정이 마무리되는 것이니까.
이번 등산으로 느낀 바가 많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처럼 다시 태어난 듯하다. 결국 우리는 산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힘든 오르막길을 거쳐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다. 등산을 했다면 언제나 하산하는 법. 그리고 다시 집에 오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몇 번씩의 등산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