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 _욥6:29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나면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고통 중에 듣는 섣부른 진단과 충고는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욥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먼 길을 찾아와 7일간 함께 슬퍼해 준 친구의 말이 걱정에서 비롯됐음을 알지만, 욥은 친구가 제시한 '인과응보'라는 쉬운 공식에 자신의 경험을 꿰어 맞추기를 거부한다.
1 그러나 욥이 대답했습니다. 2 "내 고뇌를 달아 볼 수만 있다면, 내 이 비참함을 저울에 올려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 때문에 내 말이 경솔했구나. 4 전능하신 분의 화살이 내 속에 박혀서 내 영이 그 독을 마셨으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향해 줄지어 서 있구나. 5 풀이 있는데 들나귀가 울겠는가? 꼴이 있는데 소가 울겠는가? 6 소금 없이 맛없는 음식이 넘어가겠는가? 달걀흰자에 무슨 맛이 있겠는가? 7 나는 그것을 건드리기도 싫다. 그런 것을 먹으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8 내가 구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셨으면 9 하나님께서 선뜻 나를 죽여 주셨으면, 그 손을 놓아 나를 끊어 버리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네! 10 그러면 내가 편안해질 텐데. 그래, 고통 속에서도 기뻐 뛸 텐데. 내가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으니까. 11 내게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소망이 있겠는가?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살아야 하는가? 12 내가 무슨 돌 같은 힘이라도 있단 말인가? 내 몸이 청동이라도 된단 말인가? 13 나 스스로를 도울 힘이 내게 없지 않느냐? 지혜가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느냐? 14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저버릴지라도 친구라면 고난받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여야 하는데, 15 내 형제들은 시내처럼,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그냥 지나가 버릴 뿐이구나. 16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시커멓게 되고 물속에서 눈이 녹아 넘치게 흘러도 17 날이 따뜻해지면 물이 없어지고 더워지면 그 자리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구나. 18 물길에서 벗어나면 갈 곳 없어 사라지는구나. 19 데마의 대상들이 그 물을 찾고 스바의 상인들도 기다렸다. 20 그들이 바랐기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고 거기에 가서는 실망뿐이었던 것일세. 21 이제 자네들도 아무 도움이 안 되네. 내가 무너진 것을 보고는 더럭 겁이 나나 보네. 22 내가 언제 무엇을 좀 달라, 네 재산에서 얼마를 떼어 달라, 23 적의 손에서 나를 구해 달라, 극악무도한 자의 손아귀에서 돈 주고 나를 빼 달라고 하던가? 24 나를 가르쳐 보시게나. 내가 입 다물고 있겠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가르쳐 보란 말이네. 25 바른말은 실로 힘이 있는 법이지. 그러나 자네들은 도대체 뭘 나무라고 싶은 건가? 26 자네들이 말을 책잡으려는 것 같은데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은 그저 바람 같은 것 아닌가? 27 자네들은 고아를 놓고 제비뽑기하고 친구들조차 팔아넘기겠군. 28 그러니 자네들은 조용히 하고 나를 잘 보게나. 내가 자네들의 얼굴에 대고 거짓말이라도 하겠는가? 29 부탁하는데 잘 돌아보고 불의한 일을 하지 말도록 하게나. 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나. 30 내 혀에 불의가 있던가? 내 입이 악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겠는가?" _욥6:1-30, 우리말성경
엘리바스의 말이 끝나자 그를 비추던 조명이 암전(blackout)됨과 동시에, 이전보다 더 강한 빛이 욥을 비춘다. 3장에서 홀로 탄식하던 모습과 달리, 이제 욥은 분명한 논쟁의 상대로서 엘리바스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을 넘어선 실망감과 항변의 날카로움이 실려 있다.
이 단절적이고 급격한 조명의 이동은, 일방적인 훈계의 시간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이제부터 치열한 '공방'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다. 욥은 더 이상 수동적인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능동적인 토론자로 무대 위에 선다. 이 장면은 앞으로 이어질 격렬한 대화를 예고한다.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나면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고통 중에 듣는 섣부른 진단과 충고는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욥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먼 길을 찾아와 7일간 함께 슬퍼해 준 친구의 말이 걱정에서 비롯됐음을 알지만, 욥은 친구가 제시한 '인과응보'라는 쉬운 공식에 자신의 경험을 꿰어 맞추기를 거부한다. 욥은 마음 한 켠에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덮어두지 않는다. 친구의 말대로 내가 정말 의롭지 못했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의 죄를 벌하고 계신 것인가? 그리고 말한다. "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
스스로 통찰과 연륜을 가졌다 믿는 사람들은 자칫 쉽게 해결책을 던진다.
"(경험 많은)내가 보니까 그건 이렇기 때문이야. 그건 이렇게 하면 해결돼. 그건 너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나도 그런 경우 다 겪어봤어. 결국 네가 문제야. 그걸 깨달아야 할텐데.."
하지만 우리의 공감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의 경험과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고 자부할 때가 가장 교만에 빠지기 쉬운 때이다. 그리고 쉬운 답을 던진다. 쉬운 답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 네 말은 다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정말 네가 내 문제를 다 알아? 내가 처한 순간순간을 다 겪어봤어? 내 평소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네가 다 살펴봤어? 내가 하나님을 향해 품은 생각의 크기를 직접 재봤어?"
누구도 이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부탁하는데 잘 돌아보고 불의한 일을 하지 말도록 하게나. 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나. 내 혀에 불의가 있던가? 내 입이 악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겠는가? _욥6:29-30
이 지점에서 욥은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를 붙잡는다. 바로 "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라는 선언이다. 이것은 자신이 죄 한 점 없는 완벽한 존재라는 교만한 주장이 아니다. 적어도 이 끔찍한 재앙을 당할 만큼의 특정하고 악한 죄를 범하지는 않았다는, 자신의 삶의 진실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그는 친구의 이론을 만족시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고백할 수 없었다.
엘리바스는 처음에 무엇을 공감한 걸까? 엘리바스는 그건 이러이러한 문제라고 단정을 짓고 왜 그걸 모르냐고 욥을 질책했다. 그리고 쉬운 답을 던졌다. 그렇지만 욥은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해결보다 혼란과 고통을 주었다.
욥은 자신의 의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조언이라는 이름의 세상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욥은 주께서 주셨을 그 혼란과 의문에 정직하게 대면한다. 욥은 자신 안에 있는 의에 대해 확신을 버리지 않는다. 세상의 논리가 아무리 공고해도, 그가 그동안 주님과 동행하며 배운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욥의 엘리바스에 대한 일갈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잡아먹으려 기회를 노리는 세상에 대한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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