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_욥11:7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꾸했습니다. 2 "말이 많으니 대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겠는가? 3 속 빈 자네의 말에 사람들이 잠잠히 있겠는가? 자네가 비아냥거리는데 자네를 망신 줄 사람이 없겠는가? 4 자네가 '내 주장은 순수하고 나는 주가 보시기에 깨끗합니다' 하는군. 5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입술을 열어 자네를 치시기를 빌 뿐이네. 6 그분이 자네에게 지혜의 비밀을 보여 주시기를 바라네. 지혜는 양면을 갖고 있다네. 하나님께서 자네의 죄 가운데 얼마를 잊어 주셨음을 알게나. 7 자네가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자네가 전능하신 분을 완전히 찾아낼 수 있겠는가? 8 하늘보다 높은데 자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지하 세계보다 깊은데 자네가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9 재 보자면,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단 말일세. 10 그분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서 재판을 여시면 누가 그분을 막을 수 있겠는가? 11 그분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알아보시는데 악을 보고 분간하지 못하시겠는가? 12 미련한 사람이 지혜로워지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걸세. 13 그러나 만약 자네가 마음을 다잡고 그분께 자네의 손을 뻗으면 14 만약 자네의 손에 있는 죄를 치워 버리고 어떤 악도 자네의 장막 안에 있지 못하게 하면 15 자네가 흠 없이 얼굴을 들 수 있을 걸세. 자네가 굳게 서서 두려워하지 않을 걸세. 16 자네가 고난을 잊어버릴 것이니 기억하더라도 고작 흘러간 물 같을 걸세. 17 그리고 자네의 나날들이 정오의 빛보다 환할 것이고 어둠은 아침같이 밝아질 걸세. 18 자네는 이제 괜찮아질 것이네. 아직 희망이 있으니 말이야. 그래, 자신을 잘 추스르고 편히 쉬게 될 걸세. 19 자네가 누울 때도 아무도 두려움을 주지 않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자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쓸 것이네. 20 그러나 악인의 눈은 앞을 보지 못하고 피할 길이 없을 것이며 그 소망은 숨이 끊어지는 것뿐일세." _욥11:1-20, 우리말성경
욥의 긴 독백이 끝나자, 그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마침내 세 번째 친구 소발에게 빛이 향한다. 그는 앞선 두 친구와 달리, 위로자의 가면마저 벗어 던진 듯 처음부터 날카롭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의 목소리에는 동정심보다는 욥의 말에 대한 조바심과 분노가 실려 있다.
이 장면은 친구들이 욥에게 가하는 1차 공세의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혹독한 순간이다. 엘리바스의 '개인적 경험'과 빌닷의 '역사적 전통'에 이어, 소발은 '교리적 확실성'이라는 세 번째 칼을 빼 든다. 그는 욥의 고통에 대한 어떤 공감도 없이, 오직 자신이 믿는 흑백논리에 근거하여 욥을 정죄한다. 이로써 욥을 둘러싼 신학적 압박은 최고조에 달하며, 욥이 이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정답'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7 자네가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자네가 전능하신 분을 완전히 찾아낼 수 있겠는가?
소발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불가해함을 선포한다. 이 말은 그 자체로 웅장한 진리다. 그러나 소발은 이 진리를 욥의 모든 질문을 묵살하고 그의 입을 막는 무기로 사용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너는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시니, 너는 감히 그분의 일에 의문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 잠자코 네 죄를 인정하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아무런 의문도 갖지 말고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의 전부인가?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폭군이 아니시다. 오히려 우리의 이성과 의지를 통해 그분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스스로 납득하여 기꺼이 따르기를 원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소발의 하나님은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멀고 두려운 존재이지만, 욥이 씨름하는 하나님은 대답을 요구하며 매달릴 수 있는 대상이다.
아무리 탐구해도 하나님을 다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분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 더욱 겸손하게, 그리고 더욱 치열하게 하나님 알기를 힘써야 한다는 초청이다. 소발은 하나님의 신비를 자신의 '지적 게으름'과 '섣부른 정죄'의 방패로 삼았다. '알 수 없으니 더 이상 묻지 말고 내 말을 들으라'는 태도는, 결국 자신이 만든 교리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마는 교만으로 이어진다.
참된 신앙의 자유는 '하나님은 알 수 없으니 내 판단이 맞다'는 닫힌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내 이해를 초월하시기에 더욱 알고 싶다'는 열린 자세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소발과 같이 교리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신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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