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욥기 묵상

욥기 18장

분노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자여... _욥18:4

by 제이프릭

1 그러자 수아 사람 빌닷이 대꾸했습니다. 2 "자네 도대체 언제까지 말을 할 건가? 정신 좀 차리게. 우리도 말 좀 하세. 3 어떻게 우리가 짐승 취급을 받고, 자네 눈에 그렇게 비열하다고 여겨지는 것인가? 4 분노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자여, 자네가 땅을 황무지로 만들겠는가? 바위를 그 자리에서 옮기자는 것인가? 5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그 불꽃은 타오르지 않을 걸세. 6 그 장막에서는 빛이 어두워지고 그 곁의 등불도 함께 꺼질 걸세. 7 그 힘찬 발걸음이 약해지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걸세. 8 그 발은 스스로 그물에 걸리고 그 올가미에 빠지게 되지. 9 그의 발꿈치는 덫에 걸리고 올가미가 그를 얽어맬 걸세. 10 그를 잡으려고 땅에 올가미가 놓여 있고 그가 가는 길에 덫이 놓여 있다네. 11 사방에서 그를 무섭게 하며 그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끝없이 따라다닌다네. 12 그는 굶주려 힘이 빠질 것이고 파멸이 그 곁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13 그 힘 있던 살을 파먹고 죽음의 장자가 그 힘을 삼키고 말 걸세. 14 그의 자신감은 그 장막에서 뿌리째 뽑히고 공포의 왕에게로 끌려갈 걸세. 15 그의 장막에서 사는 것 가운데 그의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일세. 그가 사는 곳에는 유황이 뿌려질 걸세. 16 그 뿌리는 밑에서부터 말라 버리고 위로는 가지들이 잘릴 걸세. 17 그에 대한 기억은 이 땅에서 사라져 없고 그 이름은 거리에서 존재하지 않을 걸세. 18 그는 빛에서 어둠으로 빠져들고 이 세상에서 쫓겨날 걸세. 19 그는 그 백성들 가운데 아들도, 후손도 없을 것이며 그가 살던 곳에는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걸세. 20 그 선대가 두려움에 싸였듯이 그 후대가 그 운명을 보고 놀랄 걸세. 21 악한 사람의 집은 반드시 그렇게 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사는 곳일세." _욥18:1-21, 우리말성경


욥의 독백이 끝나자, 조명은 두 번째 친구 빌닷에게 다시 향한다. 2차 논쟁에 나선 그의 모습은 8장에서 보았던 딱딱한 학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욥의 항변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와 조급함이 섞여 있다. 그는 욥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는 분노'로 규정하며, 인정사정없이 악인의 운명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묘사를 쏟아낸다.


이 장면은 엘리바스가 15장에서 사용했던 '악인의 초상화' 전략을 빌닷이 그대로 이어받아, 논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욥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악인의 운명'이라는 틀에 욥을 강제로 밀어 넣고, 그가 겪는 모든 재앙이 바로 그 증거라고 낙인찍는다. 이로써 친구들의 연대는 더욱 공고해지고, 욥은 더욱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든다.




분노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자여... _욥18:4


빌닷은 욥의 호소를 분노로 받아들였다. 감히 하나님께 분노하다니? 무엄하게 하나님께 토를 달다니? 이렇게 두시면 이렇게 살고 저렇게 두시면 저렇게 사는거지 믿는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문을 품다니? 물론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해진 모든 상황에 그저 어떤 뜻이 있겠지 하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깊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때 우리의 믿음은 맹목적인가? 하는 의문에 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신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이해에 상관없이 무조건 믿는 사람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고 이해가 안될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만큼 쌓인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각자에게 예비하신 분량만큼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이란 그 분량을 넘어서는 것이다. 나의 실제 믿음은 이정도인데, 저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객기를 부리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언제가는 바닥이 드러난다. 참된 믿음은 주께서 허락하시는 만큼 행하는 것이다. 욥은 그 부분에 솔직했기에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는 불신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이해 수준이 친구들보다 뛰어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말했으나 사실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욥에게 이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진노했다. 너희는 나에 대해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았다. _욥42:7, 우리말성경


하나님은 신자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고 설득하시고 이해시키시는 분이다.

우리의 믿음은 부풀릴 수 없다. 거꾸로 감출 수도 없다. 각자가 가진 믿음의 분량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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