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네_욥13:15
1 "아, 내 눈이 이 모든 것을 보았고 내 귀가 듣고 깨달았다네. 2 자네들이 아는 것을 나도 아니 나는 자네들보다 못하지 않다네. 3 정말 전능하신 분께 말하고 싶다네. 하나님께 좀 따져 묻고 싶다네. 4 그러나 자네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이니 자네들은 모두 쓸모없는 의사들일세! 5 자네들이 모두 입 좀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군! 그게 차라리 지혜롭겠어. 6 내 변론을 듣고 내 입술의 항변을 들어들 보게나. 7 자네들이 악하게 말하는 게 하나님을 위해서인가? 자네들이 속 빈 말을 하는 게 그분을 위해서인가? 8 자네들이 그분의 편을 들겠다는 것인가? 자네들이 하나님을 위해 논쟁하겠다는 것인가? 9 그분이 자네들을 살펴보셔도 좋겠나? 사람이 사람을 속이듯이 자네들도 그분을 속일 수 있겠나? 10 자네들이 쓸데없이 편을 가르면 그분이 틀림없이 자네들을 꾸짖으실 거야. 11 그분의 뛰어남이 두렵지 않은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네들에게 임하지 않겠는가? 12 자네들이 말하는 격언은 잿더미 같고 자네들의 변론은 진흙 벽에 써 놓은 것에 불과하네. 13 그러니 이제 조용히 하고 내가 말하는 대로 내버려 두게.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나도 좋네. 14 내가 왜 내 이로 내 살점을 물고 내 손으로 내 목숨을 끊겠나? 15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네. 그러나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밝힐 것이네. 16 그분 또한 내 구원이 되실 것이네. 위선자들은 그분 앞에 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니 말이네. 17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나. 18 이보게. 이제 재판받을 준비가 다 됐네. 내가 무죄가 될 것으로 알고 있네. 19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고 다투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입을 다물고 차라리 죽고 말겠네. 20 이 두 가지만은 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주로부터 숨지 않을 것입니다. 21 주의 손을 내게서 멀리 가져가시고 주의 두려움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십시오. 22 그리고 나를 부르십시오.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아니면 내가 말하겠으니 주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23 내가 저지른 잘못과 지은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허물과 내 죄를 알려 주십시오. 24 왜 주의 얼굴을 숨기시고 나를 주의 적으로 여기십니까? 25 주께서 낙엽을 괴롭히시겠습니까? 마른 겨를 쫓아다니시겠습니까? 26 주께서 내 쓰라린 과거를 기록하시고 내 어린 시절의 죄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27 주께서 또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내 모든 길을 뚫어지게 지켜보며 내 발자국을 제한하시니 말입니다. 28 그러니 사람이 썩은 것처럼 쇠약해지고 좀먹은 옷 같습니다." _욥13:1-28, 우리말성경
조명은 여전히 욥을 강하게 비춘다. 13장의 전반부에서 그는 세 친구들을 향해 그들이 '쓸모없는 의사들'이라며 직접적으로 질책한다. 그의 시선과 손짓은 친구들을 향해 있고, 그의 어조는 더 이상 변론이 아닌 선고에 가깝다. 그러다 13절을 기점으로, 그는 친구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무대 위 허공,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향한다.
이 장면은 욥이 친구들과의 수평적 논쟁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파기하는 순간이다. 그는 친구들의 위로와 변론이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찼음을 선언하고, 그들을 자신의 대화 상대로서 실격시킨다. 그리고 그는 더 위험하지만 유일하게 진실한 대상, 즉 하나님과의 직접 대면을 선택한다. 이로써 연극은 인간의 지혜가 부딪히는 한계를 명확히 하고, 신과의 직접적인 씨름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로 나아간다.
15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네. 그러나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밝힐 것이네.
욥의 친구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예, 즉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인과응보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자신들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 욥을 죄인으로 몰아세웠다. 욥은 이들의 행태를 "하나님을 위해 불의하게 말하려는가? 그분을 위해 거짓으로 말하려는가?"(13:7)라고 정확히 꿰뚫어 본다. 이는 진리보다 자신들의 신념 체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 된, 모든 교조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친구들의 신학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상자 안에 가두어 놓고, 그 상자를 지키기 위해 현실(욥의 무고한 고통)을 왜곡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들의 변호와 거짓 증언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욥은 달랐다. 그는 13장 15절에서 신앙 역사상 가장 역설적이고 위대한 고백 중 하나를 내놓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겠다. 동시에, 나는 바로 그분 앞에서 나의 무고함을 끝까지 변호하겠다.'
이것은 두 개의 모순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깊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다. 욥의 믿음은 하나님의 특정 행동(자신을 선대하시는 것)에 근거한 조건부 신뢰가 아니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향한 것이었기에, 그분이 자신을 죽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뢰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정직하게 토로하고 따져 물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듣고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13장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분께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짓된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부서지고 상처 입은 마음이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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