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_욥14:10
1 “여자가 낳은 사람은 사는 날이 얼마 되지 않고 고난으로 가득해 2 꽃처럼 피어났다 시들어 버리고 그림자처럼 덧없이 사라지는데 3 주께서 그런 사람을 눈여겨보시겠습니까? 주께서 나를 데려가 심판하시겠습니까? 4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 깨끗한 것을 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5 사람이 사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 달수가 주께 있는 것을 보면 주께서 사람이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정해 주신 것입니다. 6 그러니 그가 쉴 수 있도록 눈을 떼 주십시오. 그가 일꾼처럼 그날을 채울 때까지 말입니다. 7 나무는 베일지라도 다시 싹이 돋고 부드러운 가지가 또 나오리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8 땅속에서 그 뿌리가 늙고 그 밑동이 흙 속에서 죽는다 해도 9 물 기운이 있으면 그 싹이 돋아나고 새로 심은 듯이 가지가 나옵니다. 10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참으로 사람이 숨을 거두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11 바다에서 물이 사라지고 강이 잦아들어 바짝 마르게 되는 것같이 12 사람도 한번 누우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사라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13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숨기시고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나를 감추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께서 내게 시간을 정해 주시고 나를 기억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4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내게 정해진 모든 날 동안 나는 내가 회복될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15 주께서 불러만 주신다면 내가 주께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는 손수 만드신 것을 간절히 바라실 것입니다. 16 주께서 지금 내 발걸음을 세고 계시니 주께서는 내 죄를 뒤쫓지 않으시고 17 내 허물을 자루 속에 넣어 봉하시고 내 죄를 꿰매어 덮어 주실 것입니다. 18 그러나 산이 무너져 내리듯이,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 가듯이, 19 물이 돌들을 닳게 하듯이, 급류가 땅의 흙먼지들을 쓸어버리듯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없애 버리십니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시니 그가 사라집니다. 주께서 그의 낯빛을 바꾸시고 멀리 보내십니다. 21 그 아들들이 영광을 누려도 그는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해져도 그는 알지 못합니다. 22 그는 그저 자기 몸의 고통만 느낄 뿐이요, 자기를 위해서 슬피 울 수 있을 뿐입니다.” 욥14:1-22, 우리말성경
욥을 비추는 조명은 그대로지만, 그의 어조는 바뀐다. 12장과 13장의 날카로운 논쟁과 항변 대신, 깊은 슬픔과 철학적인 고뇌가 묻어나는 독백이 흐른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친구들이나 하늘을 향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유한한 운명을 응시하듯 무대 바닥의 한 점, 혹은 그 너머의 허무를 향한다.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희망 사이를 오간다.
이 장면은 욥의 첫 번째 긴 반론을 마무리하는 부분으로, 논쟁의 차원을 그의 개인적인 억울함을 넘어 모든 인간이 겪는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시킨다. 특히 잘린 나무와 죽은 사람을 대비시키는 부분은 이 연극의 핵심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망 속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14:14)라고 질문하며 부활과 회복의 소망을 상상하는 순간이다. 이 짧은 희망의 불꽃과 이어지는 깊은 절망의 대비는, 욥의 내면적 갈등의 깊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10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참으로 사람이 숨을 거두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욥의 첫 번째 긴 연설은 인간 실존의 비극에 대한 깊은 탄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베어도 다시 싹이 돋는 나무와, 한번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는 인간의 운명을 날카롭게 대비시킨다. 자연에는 순환과 회복의 희망이 있지만, 유한한 인간에게는 오직 단절과 소멸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간이 왜 풀 한 포기보다 못한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이 깊은 절망 속에서 욥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14:14). 그는 이 질문과 함께, 한 줄기 빛과 같은 상상을 펼쳐놓는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잠시의 은신처가 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시고' 불러주시며,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을 '간절히 바라는' 날이 오리라는 소망이다. 이는 단순한 생명 연장의 바람이 아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죄가 용서받으며, 하나님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깊은 관계적 갈망이다.
하지만 이 눈부신 희망은 곧바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다. 욥이 지금 경험하는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소망을 없애 버리시는"(14:19) 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상상 속에서 그렸던 자비로운 하나님과, 현실에서 그를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그래서 그의 독백은 다시 차가운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비록 절망으로 끝났을지라도, 욥이 던진 "다시 살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과 같다. 그는 친구들처럼 값싼 희망으로 현실을 덮지 않는다. 대신 가장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너머에 있을지 모를 궁극적인 소망을 향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다. 욥기는 이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둔 채, 길고 긴 침묵과 논쟁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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