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집 사기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모기지 절차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드디어 저번 주에 최종 승인이 났고 드디어 이사날짜도 12월 2일로 확정됐다. 가능하면 크리스마스 전, 더 빠르면 생일 전에 새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예상했던 와중에 계속 완공날짜도 미뤄지고 모기지 승인도 늦어져서 전전긍긍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한국에선 집 구매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대략 이런 과정들을 거친다.
1. Agreement in principle 받기: 모기지 브로커에게 대출을 받겠다고 문의를 넣으면 연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적힌 가계약서 같은걸 준다.
2. 사고 싶은 집에 오퍼 넣기: 가계약서를 가지고 사고 싶은 집에 오퍼를 넣는다. 이 단계에서 부동산과 가격 네고를 해서 가격을 좀 조정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불하려는 금액을 제시해서 오퍼가 승인이 나면 계약금을 입금하고 그 집을 우리가 살 거라고 홀드해놓을 수 있다.
3. 부동산 전문 변호사 구하기: 영국엔 공인중개사가 없고 대출 승인 과정부터 집이 완공되어 소유권이 이전되기까지 변호사가 모기지 브로커, 부동산과의 모든 계약을 진행해준다.
4. 모기지 절차 마무리: 오퍼가 승인이 나고 나면 모기지 브로커에게 은행과 실제 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여러 서류를 넘겨줘야 한다. 여권, BRP, 비자 승인 레터, 최근 Payslip, 3개월치 Bank statement, 집 가격의 10%+stamp duty까지 지불할 수 있음을 증빙하는 잔고 증명서류를 냈다. 이 외에도 은행에 예치된 돈의 출처를 증빙하는 여러 자료들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는데, 특히 내가 한국에서 여러 번 송금해온 돈의 출처를 증빙해달라고 해서 모인이라는 송금 서비스에서 받은 송금 영수증을 추가로 제출해야 했다.
5. 계약서 교환하기: 모기지가 최종으로 승인이 나고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변호사가 건설사와 협의한 계약사항이 정리된 여러 서류들을 보내준다. 이 단계에서 체크했던 건 Ground rent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집을 사더라도 땅을 소유하는 건 아니므로 매년 일정 금액의 지대를 지불해야 했다. 나쁜 경우에는 15년마다 거의 2배씩 이 가격이 올라서 되팔 때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의 경우 25년마다 100파운드만 오르도록 되어있어서 되팔 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리고 관리비 개념의 Service charge에는 어떤 항목들이 포함되어있는지, 금액이 몇 년마다 재조정되는지에 대한 부분도 같이 확인했다. 세부사항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면 변호사가 건설사와 최종 계약서를 교환한다.
6. 입주날짜 확정: 최종 계약서를 받고 나면 계약서를 모두 프린트 후 직접 사인을 해서 스캔 후 변호사에게 다시 보내거나, 직접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가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 된다. 사무실에 가는 게 귀찮아서 집에서 프린트를 다 하려다가, 서류 양도 너무 많고 가족이 아닌 증인의 사인도 필요해서 여러모로 번거로워서 그냥 사무실에 직접 갔다 왔다. 계약이 마무리된 후 입주가 가능한 날짜는 신축 플랏의 경우 시공사에서 건설사로 건물이 인계된 후 10일이 경과된 시점으로 정해진다.
즉, 변호사와 모기지 브로커, 은행, 건설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면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영국의 일처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리다.. 아직 완공 전이라 건물에 제대로 된 우편번호가 할당되지 않은 바람에 은행이 가지고 있는 우편번호와 건설사 측 계약서 상에 적혀있는 우편번호가 달랐는데, 그걸 크로스 체크하는데 무려 2주가 넘게 걸려서 증말 속 터지는 줄 알았다^^^^ 우리는 그나마 신축 플랏이기 때문에 완공만 되면 바로 입주할 수 있지만 만약에 입주하려는 집의 주인도 이런 절차를 같이 진행하고 있다고 하면 집을 사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아무튼 대출 승인이 나자마자 가구부터 찾아보기 시작했고, 일단 가장 급한 건 침대, 소파, 식탁 같은 큰 가구들이었다. 어딜 가야 한꺼번에 가구를 많이 볼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무작정 Peter Johns(영국의 백화점 체인)랑 Harrods로 갔는데 생각보다 가구 쇼핑 넘 재밌쟈나..? 처음엔 내가 어떤 스타일들의 가구를 좋아하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었지만 여러 가구 브랜드를 비교하다 보니 나는 단정하고 깔끔한 가구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런 디자인들을 보통 미드 센추리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뜻밖의 취향 발견) 남편과도 으악 이게 뭐람과 우왕 이거 너무 예쁘다를 오가는 반응의 포인트가 서로 비슷해서 인테리어 스타일을 두고 협상해야 하는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다만 소파 사이즈와 침대 매트리스만큼은 좀 협상이 필요했는데 남편이 무조건 소파 큰 거!!! 다리 뻗을 수 있을 만큼 큰 거!! 를 외쳤으나 암만 생각해도 우리 집 거실 사이즈엔 코너가 붙은 소파를 욱여넣기엔 각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결국 설득의 설득을 거듭하여 코너 소파 포기하는 대신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스툴을 사기로 타협했다. 나는 침대 매트리스는 무조건 템퍼로 사야 한다!!!라고 우겼는데 여름엔 덥다는 후기들도 많고 막상 누워보니 너무 물렁물렁한 느낌이라 존 루이스에서 파는 쿨링감 있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로 타협했다. 어쨌든 서로 한 발짝식 양보해서 싸우지 않고 가구 쇼핑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하도 모든 게 지지부진했어서 이사를 가긴 가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입주날짜까지 10일도 안 남았다ㄷㄷ 매년 새해 전날이면 남편 친구들과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곤 했는데 올해 새해맞이는 파티는 우리 집 집들이를 겸해서 하기로 했다.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면 런던아이도 바로 보여서 새해 불꽃놀이를 사람에 치이지 않고 집에서 구경할 생각을 하니 넘 신난다ㅎㅎ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등도 나가고 보일러도 망가지고 여기저기 점점 고장 나고 있어서 얼른 새 집으로 가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