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에 정착한다는 것은

D+11 : 정신없는 런던 정착기

by 노다

4월 24일 저녁 런던에 도착했고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사실 마지막 글을 남긴 이후로 계속 미친듯이 바빴다. 출국 전날까지 계속 일하는 와중에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고 영국에서 계속 컨택이 날아드는 바람에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자본 날이 거의 없었다. 캐리어와 배낭만 달랑 들고 런던에 도착했을 땐 분갈이하려고 꽃을 화분에서 뽑았는데 새로운 화분을 못 찾아서 전전긍긍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런던에 도착해 일주일 만에 새로 살 집을 찾았고 그 와중에 면접을 보러 다녔고 결국 무사히 직장도 구했다! 그리고 이제야 차분히 앉아서 뭐라도 긴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새 도시에 정착하려 애쓰며 느낀 건데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살기 위해서는 은행계좌, 집, 직장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글은 오자마자 이것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록들이다ㅋㅋ


워홀러들의 빛과 소금, MONZO

나는 일단 한 달치 생활비와 집세를 환전해서 들고 왔는데 평소에 현금은 아예 안 들고 다니던 나한테는 이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큰돈을 들고 다닌다는 것도 스트레스고 동전을 제대로 구분 못해서 돈 낼 때 점원한테 싹 다 내밀고 골라서 가져가 달라고 할 때마다 엄청나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ㅠㅠ그래서 오자마자 바로 몬조 계좌를 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카카오뱅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요새 런더너들중에 몬조 안 쓰는 사람 없다고 할 정도로 보편화된 핀테크 서비스다. 영국에서 은행계좌를 여는 건 정말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데 몬조는 영국 내 전화번호, 여권만 있으면 바로 계좌가 개설된다. 그리고 카카오뱅크에서 몬조로 돈을 송금하면 3일 내로 완료되고 송금수수료도 5천원 정도로 싸다. 계좌 개설하고 나면 체크카드도 무려 2일 만에(!) 배송이 완료되는데 영국에서 상상도 못 할 속도인 것..ㅋㅋ 무엇보다 체크카드는 애플페이와 연동해서 Contact-less로 사용이 가능해서 한국에서 한 번도 애플페이를 못써봤던 나에게는 정말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ㅋㅋ 게다가 오이스터 대신 교통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어서 이젠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집도 직장도 없이 마음 심란했던 나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주었던 고마운 서비스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집 구하기

살기 좋은 햄스테드ㅋㅋ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사는 동네다ㅋㅋ

초기 정착비를 좀 아껴보고자 에어비앤비로 동쪽 Bethnal Green 쪽에 임시숙소를 구했었는데 알고 보니 카운슬플랏을 개조한 4인 도미토리였고 맥도날드에 앉아있으면 욕설이 난무하는 흉흉한 동네였다..8일 예약해놨었지만 여기서 도저히 오래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호텔을 질러서 그다음 날 바로 하이드파크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런던 시내 한가운데 호텔에서 묵는 호사를 누려서 좋긴 했지만 숙박비가 나가는 게 너무 쫄리는 상황이어서 무조건 체크아웃 날짜 전에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당연히 원룸 형식의 스튜디오는 엄두를 못 냈고 (이런 데서 살려면 최소 월세 200만원 이상;;) 플랏 메이트들과 공용공간만 쉐어하는 방 한 칸을 구하기 위해 런던 북서쪽을 3일 동안 하루 3만보씩 걸어 다녔다ㅠㅠ Spareroom, 영국사랑, MixB 등등 온갖 방구하는 커뮤니티는 다 동원해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스위스코티지, 골더스그린 쪽의 플랏을 일곱개나 봤는데 방이 마음에 들면 위치가 별로고 위치가 괜찮으면 방 상태가 별로라 엄청 지쳤었다. 이 넓은 런던 아래 나 하나 들어갈 방이 없는 건가 우울했다가 결국 햄스테드히스 5분 거리의 플랏을 발견했다! 딱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여서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하고 뷰잉약속을 잡았는데 보자마자 이 집은 무조건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그다음 날 계약하고 체크아웃 날짜에 맞춰서 무사히 이사했다. 진심 이건 하늘에서 내려준 게 아닐까 싶은 타이밍ㅋㅋ 며칠째 살아보니 무엇보다 정말 안전한 동네고 집 바로 앞에는 센트럴 가는 24시간 버스가 다니고 조금만 걸으면 Belsize park tube 역도 있어서 교통도 정말 편리하다. 집주인 할머니와 산다는 게 유일한 단점인데 오히려 집주인이 같이 사니까 공용공간이 깨끗하게 관리돼서 좋은 것 같다. 플랏메이트는 파키스탄인 집주인, 집주인 조카, 칠레에서 온 UCL 학생, 호주인 프로그래머인데 집주인 조카가 EXO를 너무 좋아한다며 나를 엄청 반가워했다ㅋㅋ적당한 가격에 내가 살고 싶던 동네에 자리 잡게 되어 기쁘다.


런던에서 사무직 취업하기

처음으로 받았던 최종 오퍼메일ㅋㅋ 통화도 하고 계약서 받았는데도 잘 실감이 안났다ㅋㅋ

마지막 대망의 직장 구하기.. 한국에서부터 엄청 CV를 뿌려서 몇 군데 면접도 보고 오긴 했었는데 막상 런던 가면 아무데서도 연락이 안 올까 봐 걱정했었다ㅠ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총 9개의 회사로부터 컨택을 받았고, 최종 입사 오퍼 제안은 2건을 받았다. 하나는 한국에서부터 스카이프로 인터뷰 보고 과제도 내고 직접 회사로 가서 PT 하고 멘사 가입 문제도 풀고 여러모로 채용과정이 길었던 퍼포먼스 마케팅 에이전시였다. 내가 제시한 연봉보다는 높게 오퍼를 줬는데 좀 찾아보니 현지 경력자 연봉에 비해선 낮은 듯싶어 카운터 오퍼를 하려던 와중에 영국 카카오 IX 디렉터께서 연락을 주셨다. 몇 주 전에 서류를 내서 안되었나 보다 하고 잊고 있었는데 바로 내일 만날 수 있겠냐고 하셔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내가 했던 일과 여기서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쿨거래가 성사되었다ㅋㅋ 에이전시에서 그렇게 열심히 굴렀던 이유도 결국엔 브랜드마케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내가 해왔던 일들 외에도 새롭게 도전해볼 영역이 많아 보여서 기대가 된다. 20일부터 출근하기로 해서 그전까지는 열심히 놀아야겠다ㅋㅋ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기보다는.. 그냥 무서웠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고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야 된다는 게 외롭기도 했다. 근데 아직 도착한 지 11일밖에 안됐는데 각오하고 왔던 것보다 순조롭게 모든 것들이 잘 풀려가서 얼떨떨하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ㅋㅋ 하지만 그저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일들도 잘해나가보자 나자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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