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를 떠나며

안녕 10년 치 나의 물건들아

by 노다
집 정리하는 한 달 내내 들던 생각(...)

한 달에 걸쳐서 5년 살았던 자취방 짐들을 정리했고 이제 서울에서의 내 보금자리는 사라져 버렸다.. 영국행 준비가 지지부진하다고 느껴졌던 이유의 팔 할은 아마도 집 정리 때문이 아니었을까ㅋㅋ 자취하는 10년 동안 야금야금 불어난 짐들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매일매일 내다 버렸는데도 끝도 없이 잡동사니가 굴러 나와서 영원히 집 정리가 안 끝날 줄 알았다ㅠㅠ

집에서 고대유물들을 발굴했다..!! 심지어 전자기기들은 멀쩡히 켜진다는게 충격적..ㅋㅋ

고등학생시절 랜선 선생님들과의 추억이 깃든 PMP, 1년 치 용돈을 털어서 샀던 아이팟, 세뱃돈 모아서 샀던 소니 CDP 등등 이젠 박물관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전자기기들과 온 지구를 돌아다니며 모아뒀던 각종 티켓들, 공연 보러 갔다 사 왔던 프로그램북, 굳이 돈 주고 사모은 예쁜 쓰레기들이 집안에 가득했다. 대책 없이 사들인 책들은 알라딘에 직접 들고가서 팔다가 이래선 도저히 답이 없겠다 싶어서 그냥 박스에 죄다 넣어 택배로 부쳐 팔아버리고 매입 불가 책들은 독서모임에 기부했다. 정리한 책들 다 세보니 200권 정도 되는 듯.. 월급을 쏟아부어 모은 소중한 책들인데 균일가 700원에 팔릴 때마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_ㅠ

수 많은 잡동사니들 중 가장 버리기 짠했던 물건은 편지들이었다.. 생일카드, 롤링페이퍼, 교환학생 갔던 친구들로부터 날아온 편지, 군대 위문편지 등등 종류도 참 다양했는데 ㅋㅋ오랜만에 꺼내서 하나하나 읽어보고 10년 치 나의 흔적들을 정리하면서 이따금씩 현타가 왔다. 이제야 차갑게만 느껴졌던 거대한 서울에 뿌리를 내렸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국으로 가겠다고 했을까.. 겨우 이 도시에서 힘들 때 숨어야 할 곳들이 어딘지도 알고 외로울 땐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도 알고 심심할 땐 뭘 하고 놀아야 할지도 다 알게 되었는데.. 말 통하는 이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데만도 10년이 걸렸는데 다시 영국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또 얼마나 외롭고 치열해야 할까 문득 무서워졌다.

바이 정들었던 나의 집..ㅠㅠ바이 마포구..ㅠㅠ

그래도 홀가분히 집을 전부 비우고 나니 이젠 정말 떠나야 하는구나 실감이 난다. 인생의 리즈시절이었던 대학원생때부터 미친듯이 일만 했던 광고대행사 시절까지 5년 동안 보금자리가 되어줬고, 수십번 짐을 싸서 떠나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다가도 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이젠 추억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다. 그렇지만 여기서 쌓았던 모든 추억과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잘 정착해보자고 다짐해본다. 한번 해냈으니 두 번째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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