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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 Mar 29. 2020

봉쇄된 런던에서 살아남기

결론 :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번 달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괜찮냐고 물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그들이 나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와 같이 영국의 상황은 카오스나 다름없다. 동아시아가 몇 달 동안 코로나로 난리를 겪는 동안 인종 차별 방관하는것 말고는 한 게 뭐가 있는 건가 의심스럽게, 영국 정부는 어차피 모두가 걸릴 테니 최대한 천천히 감염되어서 집단 면역을 만들어보자는 말도 안 되는 대처방안을 내놨다가 오지게 욕을 먹고 이 정책을 철회했다. 결국 한국처럼 최대한 빠르게 검사하고 사람들을 격리하는 방향으로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데 이미 확산세를 막기는 늦은 것 같다. 총리와 보건부장관, 왕족까지 코로나 확진을 받은 마당에 아직 검사받지 못해 밝혀지지 않은 감염자들의 규모는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도 무의미한 상황으로 보인다.

일 년 전엔 헬조선을 탈출하겠다며 글을 썼었는데... 요샌 한국 재평가행

    결국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사람들은 사재기를 시작했고 도시는 사실상 봉쇄됐다. 휴지를 비롯한 생필품, 음식 사재기는 물론, 바이러스 대처에 필수적인 마스크는 애초에 구할 수도 없고 손소독제 및 파라세타몰 등 응급 의약품들도 죄다 품절이라 살 수가 없다. 저번 주부터는 3인 이상의 모임 금지, 생필품 구매나 예약된 병원 진료 등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강경한 정책을 발표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도시 봉쇄라는 말만 안 썼지 사실상 봉쇄조치가 내려진 상태이다. 유학생들은 이미 다 귀국한 듯싶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워홀러들도 많이 돌아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당장 일을 때려치울 수도 없고 개인적인 상황도 있다 보니 그냥 이곳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이 모든것도 언젠간 Latte is hores..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ㅠㅠ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는 와중에도 우리 회사는 한국 회사답게 어찌되었든 일단 출근하라는 지침이어서(한국 본사는 이미 재택근무 지침이 내려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출근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화, 목만 재택, 상황이 더 안 좋아지니 수요일엔 회사를 나오자 했다가 결국엔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올타임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지금껏 스스로를 집순이라 굳게 믿으며 살아온 터라 하루 종일 집에 갇혀있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주일째 집에만 있자니 세상 답답하다..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것과 강제로 못 나가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게다가 워홀 온 지 1주년 기념으로 마이애미 여행 티켓을 질러놓았었는데 결국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다. 난 분명히 워킹홀리데이를 온 건데 도대체 홀리데이는 오디가찌?ㅠㅠㅠㅠ

나 원래 게임 별로 안좋아하는데..재택근무 일주일 만에 게임처돌이됨^^.....

    집에만 갇혀있어야 한다고 해서 마냥 우울해 할 수만은 없으니 그래도 최대한 즐겁게 지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집 근처를 잠깐 산책하면서 성큼 다가온 봄을 느껴보기도 하고, 게임 개발자 남자친구 덕에 집에 넘쳐나는 게임기들로 잉여력을 폭발시키는 중이다. 업무시간 끝나면 동물의 숲을 탐험하고(이거 누가 힐링게임이라고 했냐..끝없는 빚쟁이의 굴레) 스타듀밸리에서는 조조의 농장을 돌보다 보면 저녁시간이 짧다ㅋㅋ부족한 운동은 비트세이버라는 VR 리듬게임으로 보충하고, 빨리빨리 한국인의 근성을 뽐내고 싶을 땐 플스버전 붕어빵타이쿤 오버쿡으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갇혀있는 김에 업무 효율도 높이고 머신러닝 공부도 꾸준히 해보려고 패캠강의를 세 개나 샀다..ㅋ 패캠 온라인 강의는 별로라는 평을 하도 많이 봐서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지금 할인도 하고 캐시백 이벤트를 하길래 그로스마케팅, 파이썬 업무 자동화, 머신러닝 패키지 세 개나 급 질렀다...(마케팅의 노예) 원래는 매주 금요일마다 UCL 가서 머신러닝 스터디 하는게 한 주의 루틴이었는데 스터디를 못하게 되니 혼자서는 아예 손을 놔버려서ㅠㅠ이렇게라도 강제로 스스로 공부하게 만들어야 어떻게든 감을 잃지 않을 것 같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봄은 옵니다.

    아무튼 구구절절 길게 이것저것 쓰긴 했지만 한 줄로 대충 요약하면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이야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부디 무탈하길. 우리 언젠가 다시 건강하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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