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걸린 거 아님 주의*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만큼 합리적이진 않아도 적어도 미국처럼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게 장점이지만, 일 처리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특정 분과의 전문의를 만나려면 GP(General Practice)의 전담의를 거쳐야 하는데 일단 GP예약을 잡는 데만도 몇 주를 기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저번 겨울에 손 피부가 다 벗겨지고 난리가 나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하나 처방받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2주를 기다렸다...ㅋ 한국이었으면 동네 아무 피부과 가서 진료 보는데 한 시간이면 끝났을 일을ㅠㅠ 그 이후에 완전 NHS(영국 국가 보건서비스)에 신뢰를 잃고 이 나라에선 절대 아프지 않으리 다짐했지만 갑자기 몇 주 전 새벽에 악관절이 너무 아파 턱을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가끔 잠에서 깨면 턱이 아플 때가 있긴 했는데 대부분 아픈 부분을 문질러주고 나면 괜찮아지곤 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심각했다. 진통제를 먹고 다시 잠들어 보려고 했는데도 계속 너무 아파서 증상을 NHS앱에 검색해봤더니 Locked jaw 증상인 경우 1시간 이내로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안내해줬다. 작년에 출국 전 급하게 신경치료를 받았던 곳까지 아파서 혹시 염증이 생긴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나서 일단 박차고 일어나 집 근처의 St. Thomas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접수할 때 입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데 구구절절 증상에 대해 설명하려니 나도 너무 아프고 듣는 사람도 짜증나겠다 싶어서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내 증상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고, 어떤 약을 먹었는지, 통증의 증상은 어떤지, 작년에 신경치료를 받았는데 뭔가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냐 등등 최대한 꼼꼼하게 적은 후 응급실에서 만나는 의료진마다 보여주었는데 매우 clever한 방법이라며 칭찬해주었다..ㅋㅋ
의사를 한번 보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접수가 진행되고 나면 의료진 모두 매우 친절하게 환자를 응대해준다. 의사 선생님 두 분이나 와서 여기저기 눌러보고 만져보더니 아무래도 턱을 더 자세하게 봐야 하는데 치과 응급실이 있는 Guy's hospital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소견서를 작성해주었다. 최대한 오픈 시간 전에 빨리 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조언과 함께 찾아가는 방법이 상세히 적힌 지도까지 친절하게 출력해주셨다. Guy's Hospital 23층에 있는 Acute dental care clinic은 아침 7시 45분에 진료를 시작하는데, 선착순으로 환자 접수를 받고 하루의 할당 슬롯이 다 차게 되면 더 이상 환자를 받지 않는다. 나는 일찍 가라는 의사선생님의 충고를 새겨 들어 7시쯤부터 가서 기다렸더니 다행히 진료시간 오픈하자마자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괜히 나 때문에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운전해준 남자친구에게 감사를ㅠㅠ) 증상을 적은 휴대폰 메모와 응급실 선생님이 적어주신 소견서를 보여줬더니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냥 집에 가서 파라세타몰 먹고 쉬라고 할까봐 걱정했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주다니 감개무량했다ㅠㅠ 별다른 특이 소견은 보이지 않고 스트레스 때문에 이를 너무 악물고 자서 그런 거 같으니 일단 처방해준 약을 10일 정도 먹어보고 다시 한번 외래진료를 오라고 했다.
약을 먹으면서도 한동안 계속 너무 아파서 턱관절 전문병원 가서 MRI를 찍어볼 수는 없냐고 남자친구한테 물어봤었는데 턱관절 전문의를 만나려면 일단 GP부터 가야 하는 데다가 그런 고급 장비가 있는 영국 프라이빗 클리닉은 듣도보도 못해봤다고 하더라ㅠㅠ도대체 이 나라 의료시스템은 어찌 굴러가는건지 적응이 안 된다ㅠㅠ 어쨌거나 떡볶이를 못 먹는 10일의 슬픈 시간을 지나 턱관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 때나 가고 싶을 때 병원을 갈 수 있다는 게 새삼 이렇게나 감사한 일이란 걸 새삼 깨달은 사건이었다. 해외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합시다 해외 동포 여러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