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요리 천재가 될 거야
자취를 10년 넘게 했어도 요리랑 담쌓고 살아왔는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고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가 늘었다. 밥이야 바쁘면 건너뛸 수도 있고 대충 허기지지 않게 배만 채우면 됐지 라는 마인드로 살아온 터라 처음엔 하루 세끼 밥때만 되면 밥을 챙겨야 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하지만 간단한 메뉴들부터 시도해보고 소소한 성공을 몇 번 경험해보면서 본격적으로 요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 같은 요리 쪼렙들은 일단 제대로 된 레시피를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요리 스킬도 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레시피만 무작정 따라 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끔찍한 혼종 같은 맛이 난다거나 열심히 지지고 볶았음에도 재료들에게 미안한 지경의 음식물 쓰레기를 생산해내기 십상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 떠도는 그림만 예쁜 1분짜리 레시피들을 조심하세요)
게다가 제대로 된 레시피를 찾는다 해도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영국의 마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저렴한 편이라 웬만한 재료들이야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지만 얇은 불고기용 소고기라던가 소갈비찜용 갈비 같은 특수한 용도의 고기는 큰 마트에 가거나 뉴몰든 한인마트까지 가지 않는 한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 요리 스킬은 주로 인터넷의 여러 레시피를 주변 마트나 시내의 작은 한인마트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조합해 먹을만한 맛을 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ㅋㅋ 아래 레시피들은 그간 시도해본 메뉴 중에 제일 성공적이었던 메뉴들이다.
1. 소울푸드 떡볶이 레시피
원래도 떡볶이 덕후였던 나는 런던 한식당에서 먹어본 떡볶이들이 다 불만족스러웠어서 유튜브에 있는 온갖 레시피를 시도해보고 내 입맛에 딱 맞는 레시피를 찾았다. 영국 사람인 남자친구는 어떻게 맨날 그렇게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거냐며 놀라워했지만 한국인이라면 원래 일주일에 3 떡볶이 정도 하면서 사는 거 아닌가여...? 떡볶이 만들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계란 삶을 물부터 올리고 시작하는 것⭐이다.(막례할무니 명언)
1) 필수 재료: 1인분 기준 떡볶이 떡 한 줌, 어묵 큰 거 2장(혹은 취향껏 더), 계란, 물 400ml(라볶이일 땐 450ml), 고추장 1 큰술, 고춧가루 반 큰 술, 설탕 1 큰술, 파, 식용유
2)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안 넣어도 되는 재료: 올리고당, 커리파우더 아주 쪼금, 다진 마늘
3) 순서 : 계란 삶기 -> 파 조금 썰어서 식용유로 파기름 내고-> 물에 고추장, 설탕, 다진 마늘 풀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어묵, 떡 넣고 중불로 끓이기 -> 물이 졸아들면 간을 보고 단맛이 더 필요하면 올리고당 넣고, 커리파우더 조금, 더 맵게 하고 싶으면 고춧가루 추가 -> 라볶이를 만드는 중이라면 떡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면을 넣고 라면수프도 조금 넣어준다. -> 삶은 계란을 올려주면 완성!
2. 마제소바 레시피
한 주에 70시간 일하던 광고회사 노예였을 시절,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신사동 멘야하나비 가서 마제소바 한 그릇에 생맥주 한잔 하고 집에 가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그런데 런던에서는 비슷한 음식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그냥 집에서 만들어먹었다ㅋㅋ사실 가쓰오부시라던가 부추는 구할 수가 없어서 아래 링크의 유튜브 레시피를 기본으로 대충 변형해서 만들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맛만큼은 아니지만 입맛 까다로운 남자 친구가 별 8점을 줄 정도로 꽤 맛있었다.
1) 재료 : 다진 소고기(영국 마트에서는 다진 돼지고기를 안 팔아서 대신 썼음), 우동 면(못 구하면 칼국수 면으로 대체 가능), 두반장(이게 사실 핵심 재료), 다진 마늘, 김, 다시마, 설탕, 식초, 간장, 치킨스톡(가쓰오부시 대신에 쓰면 된다), 대파(Leek), 고추기름, 계란 노른자
2) 순서 : 대파를 채 썰어 찬물에 넣고 매운맛을 빼준다 -> 물, 미림, 간장을 1 : 1 : 0.5 비율로 넣은 후 다시마, 치킨스톡을 추가하여 중불에서 끓이고 체에 걸러 간장소스를 만든다-> 식용유를 두르고 팬을 달군 후 치킨스톡을 조금 넣어 감칠맛을 더한 후 다진 마늘을 볶아준다 -> 2인 기준 다진 소고기 반팩에 간장 한 스푼, 두반장 한 스푼을 넣고 볶는다 -> 삶은 면에 간장소스, 고추기름 조금 넣고 비벼준 후 소고기 고명, 채 썬 대파, 김 고명, 계란 노른자 얹어서 마무리
*참고 : 간장소스 만드는 김에 넉넉하게 만들어서 다른 요리 할 때 여기저기 만능간장으로 써도 좋음.
3. 삼겹살 간장 오븐구이
삼겹살 먹고 싶은데 그냥 구운 삼겹살은 싫어라 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색다른 레시피를 찾다가 시도해본 메뉴이다. 잘 양념해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메뉴라 간단하지만 오븐 온도를 높게 설정해야 해서 플랏이 찜통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1) 재료 : 삼겹살, 간장, 굴소스, 다진 마늘, 참기름, 당근, 감자 등 각종 채소 취향껏(Pre-washed 된 야채팩 사다 쓰면 편함)
2) 순서 : 오븐 230도로 데워서 준비-> 간장 3큰술, 굴소스 2스푼, 다진 마늘 1알, 참기름 조금 넣고 삼겹살 소스를 만든다 -> 삼겹살은 X자로 칼집을 내서 준비한 후 만들어둔 소스에 재워둔다-> 오븐이 데워지면 트레이에 알루미늄 포일을 깔고 야채, 삼겹살을 얹은 후 포일로 뚜껑을 덮어준다 -> 30분 동안 230도 오븐에 구움 -> 포일 뚜껑을 열고 한번 뒤집어서 10분 정도 더 구워주면 완성
4. 아보카도 연어장 덮밥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자꾸 나에게 연어장 레시피를 보여주는 바람에 꽂혀서 만들게 된 메뉴이다. 보통 마트에서 파는 연어팩은 생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들 하던데 나는 별 문제없이 사용했다. 선도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마트에 가서 스시 퀄리티 연어를 달라고 해서 만드는 게 안전할 것 같다.
1) 재료 : 생연어, 아보카도, 간장, 양파, 대파(Leek), 통마늘, 통후추, 다시마, 맛술, 레몬농축액
2) 순서 : 미림 2큰술, 간장 한 컵(대략 200ml)에 대파, 통마늘, 통후추, 다시마를 넣고 중불에서 한소끔 끓여 간장소스를 만듦 -> 끓인 간장소스에 양파를 반 개 정도 채 썰어 넣고, 레몬농축액 조금 넣어줌(레몬을 직접 썰어 넣어도 됨) -> 먹기 좋은 크기로 연어를 잘라 식힌 간장소스에 넣고 숙성시킴(최소 1일~3일 정도 숙성시키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함) -> 숙성된 연어와 아보카도를 따뜻한 밥 위에 얹고 계란 노른자를 얹어 마무리
요리를 한다는 건 레디밀을 뜯어 데워먹는 것보다, 배달앱으로 뚝딱 음식을 받아먹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재료를 씻고 다듬고 세심하게 불을 조절해가며 한 끼를 만족스럽게 차려내고 나면 이렇게 험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나를 스스로 챙길 수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무언가 생산적인걸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온다. 앞으로 나를 더 잘 추스르고 돌보기 위해 요리 실력을 꾸준히 더 늘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