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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 Sep 11. 2020

코시국의 여름휴가

런던 남쪽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들

    퇴사하면 런던 근교라도 짧게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8월 동안 남자친구는 프로젝트 마감기간이라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일해야 했고 나는 부트캠프 찾아보고 테스트 보고 과제 제출하느라 하루 종일 집에만 처박혀있었다. 그래도 여름이 가기 전엔 휴가는 한번 다녀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공휴일이 끼어있는 8월 마지막 주에 일주일 동안 런던 근교의 남자친구 아버님 댁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시내에서 교외로 나가는 것보다 아버님 댁에서 움직이는 게 어디든 가기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동안 스파를 하면서 푹 쉬다 오기로 결정했다. 어디든 멀리 가고 싶었지만 아직도 영국의 코로나 상황은 불안한 상황이어서 올해는 이 정도의 휴가로 만족하기로ㅠㅠ

    아버님 댁은 런던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이스트 그린스테드(East Grinstead)에 있다. 근처에는 위니더푸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애쉬다운 포레스트(Ashdown Forest)라는 넓은 숲이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남자친구의 할아버님이 손수 지으셨다는 집은 오래되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가꾸고 돌보아온 정성이 느껴지는 아늑한 공간이다. 저번 크리스마스 휴가 때 머무르다 온 적이 있고 종종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이미 몇 번 가보았는데 갈 때마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아버님이 애정을 쏟아서 돌보신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애쉬다운 포레스트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이번 휴가의 콘셉트는 먹고 놀면서 아버님 댁 근처의 즐길거리들을 탐방하는 것이었다. 가장 1순위는 탁 트인 바닷가에 가는 것이었는데 관광지로 인기 있는 해변은 사람이 너무 몰릴 것 같아서 이스트본과 헤이스팅스 딱 중간쯤에 있는 그나마 덜 유명한 Norman's bay라는 해변가를 다녀왔다. 백사장이 아니라 자갈로 된 해변가여서 걷기가 편하고 좋았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오히려 해변가에서 집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Herstmonceux castle이 훨씬 좋았다. 15세기에 지어진 East sussex 지방의 가장 오래된 벽돌 성이라는데 성 내부는 코로나 때문에 통제되어 있어서 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원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고 사람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ㅋㅋ날씨 좋은 날에 하루 종일 피크닉 하러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이번 휴가에서 의외의 가장 꿀잼 포인트는 라마 농장이었다. 남미 여행 갔을 때 두 달 동안 무거운 배낭에 라마 인형을 이고 지고다니며 모셔왔을 정도로 라마 덕후인 나는 영국에서 라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 신났었다! 막상 가보니 꼬맹이들과 체험학습 오신 부모님들이 가득한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많은 곳이었다..ㅋㅋ 그래도 그 사이에서 나는 꿋꿋이 라마한테 밥도 주고 셀피를 찍으려 시도해보았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ㅠㅠ

    아버님 댁을 떠나 예약해둔 호텔로 가는 길에 체크인 시간까지 애매하게 남아서 잠깐 Wisley Garden에 들렀다. Kew Garden과 더불어 영국의 최고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Kew Garden이 전 세계의 신기한 식물을 다 모아둔 식물원 같은 느낌이라면 이곳은 좀 더 대중적인 식물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드닝 쇼룸 같은 곳이었다. 가드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정원도 이런 식물들로 채워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갈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이번 휴가의 마지막 코스는 Penny Hill Park 호텔에서 스파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었다. 남자친구가 예전에 회사 워크샵으로 이 호텔에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았다며 꼭 다시 가고싶다고 해서 예약한 곳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호텔에서 묵는게 꺼려지기도 하고 1박 가격도 뭐가 이렇게 비싼가 무슨 5성급이나 되냐 하면서 고민끝에 예약했는데 막상 가보니 진짜 5성급인 것...ㄷㄷ 그만큼 객실도 서비스도 모든 게 마음에 들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룰 때문에 스팀식 스파는 모두 이용할 수가 없고 야외 실내의 풀장도 최대 입장 가능한 사람 수를 제한하고 있어 이용하는데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따뜻한 물에 목욕하면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또 오겠다고 다짐함..ㅋㅋ

    이렇게 올해의 여름휴가는 런던 근교에서 소소하게 끝냈지만 그래도 다시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에 짧게나마 휴가를 다녀와 다행이다. 저번주부터 다시 하루에 확진자 수가 3천명을 넘나드는 수준으로 심각해졌고 오늘부터는 6인 이상의 친목 목적의 모임이 금지되었다. 원래라면 가을쯤에 부모님이 런던에 오실 예정이었고 연말에는 한국을 한번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올해는 꼼짝없이 영국에 갇혀있게 되었다. 얼른 코로나가 물러가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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