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유부녀가 되었습니다
4월 11일자로 드디어 유부녀가 되었습니다!ㅋㅋ 아직 락다운이 덜 풀린 상황이라 하객을 최대 네 명까지밖에 초대를 못하는 상황이어 시댁 식구들만 모시고 아주 간소하게 예식을 올렸다. 우리 부모님이 못 오셔서 많이 아쉬워하셨지만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면 올해 하반기쯤에 영국에서 애프터 파티를 하고, 한국에서는 내년쯤에 정식으로 다시 한번 더 예식을 올리게 될 것 같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1도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어쩌다 보니 결혼식을 세 번 하게 생겼다ㅋㅋㅋ 처음엔 질색팔색 하기 싫다고 난리를 쳤는데 사실 결혼식이란 내 행사가 아니라 부모님의 행사인 것....그냥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타협하기로 했다.
국적이 다른 사람 간의 결혼이다 보니 거쳐야 하는 행정적인 절차가 조금 복잡했다. 영국에선 혼인신고라는 개념이 따로 없고, 시청에 가서 결혼식을 하면 결혼식 당일에 혼인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려면 일단 시청에 결혼 노티스를 하고 인터뷰를 거쳐 우리가 적법한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심사를 받아야 했다. 노티스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장 72일이 걸릴 수 있다고 해서 프로포즈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노티스가 가능한 곳을 찾았는데 운 좋게도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첼시 구역의 시청에서 신고가 가능했다. 인터뷰라고 해서 조금 긴장했었지만 담당 공무원도 친절했고 질문 자체도 우리가 위장결혼을 하려는 커플이 아닌지를 확인하는 간단한 질문들이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냈다. 인터뷰를 끝낸 바로 그다음 주 락다운이 시작되어버렸고, 빠르면 2주 뒤쯤 결과를 알려주겠다더니 심사 결과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첼시 시청에 메일도 쓰고 전화도 몇 번이나 했는데 메일은 묵묵부답이고 전화상담원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ㅠㅠ 그래서 딱 72일이 지나는 날 또다시 전화를 해봤더니 이미 문제없이 처리가 되었다고 하더라..? 나는 시청에서 뭔가 레터를 보내주는 줄 알고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만약에 결혼신고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72일 전에 시청에서 통보를 해주게 되어있고 아무런 통보를 못 받았다면 무사히 처리가 된 것이라고 한다. 하도 영국 행정처리가 엉망이기로 악명이 높아서 걱정했는데 아무 문제없이 통과되어서 다행이었다ㅠㅠ
만약에 영화 어바웃 타임 같은 결혼식을 할 거였다면 준비할게 끝도 없었겠지만 나의 경우엔 시청에서 하는 결혼식 외에는 크게 준비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12월부터 4월까지 락다운 기간이라 필수 상점 빼고는 아무 가게도 열지 않아서 모든 결혼에 필요한 쇼핑들을 인터넷으로 해야 했다... 드레스는 미루고 미루다 한 달 전에 제일 배송 빨리되는 쇼핑몰에서 대강 샀고, 대신 왠지 웨딩슈즈만큼은 제대로 된 걸 사야겠다 싶어서 큰맘 먹고 처음으로 명품 구두란 걸 사봤다. 남편한테는 부모님이 정장을 맞춰주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셨었는데 테일러샵이 열었을 리가.. 그래도 셔츠와 보타이는 살만하겠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주문 가능한 테일러샵을 찾아 겨우 주문했다. 보통 몇 달간 반지원정대를 떠난 후에야 겨우 끝낼 수 있다는 반지 쇼핑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티파니 웹사이트에서 제일 무난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고르고 10분 만에 끝내버렸다. (결혼반지를 인터넷으로 살 줄이야ㅋㅋㅋ) 근데 드레스를 제외한 모든 물품의 사이즈를 잘못 주문하는 바람엨ㅋㅋ결혼 전 한 달 동안은 내내 쇼핑과 환불의 연속이었다^_ㅠ 부케와 부토니에는 시부모님이 결혼선물로 주문해주셨는데,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하객들을 위한 꽃도 같이 주문해주셔서 넘 감사했다ㅎㅎ
결혼식 당일 예약 15분 전에 시청에 도착하니 담당 공무원이 인터뷰 때 작성했던 인적사항이 정확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결혼식 장소로 안내해주셨다. 결혼식 순서는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을 하고나서 반지교환을 하고, 마지막으로 함께 혼인신고서에 서명을 하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과정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평생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주고받고 나니 지금껏 실감 나지 않았던 결혼이라는 게 처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혼인 서약할 때 남편은 좀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어색해서 계속 웃었다ㅋㅋ
결혼식이 끝나니 공무원분들이 건물 밖 포토스팟으로 안내해 주셨다. 문이 열리고 밖으로 걸어 나가니 첼시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남들의 관심을 극도로 꺼리는 무대공포증 환자라 주목받는걸 엄청 싫어하는데 언제 또 내가 이런 관심을 받아보겠나 싶어서 최대한 즐기는 척을 해보았다..ㅋㅋ 결혼식 주 내내 비가 왔었고 일기예보도 비가 올 거라고 했었는데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내가 여행을 가거나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엔 항상 날씨가 좋다ㅋㅋ)
결혼식을 잘 끝냈으니 이제 마지막 넘어야 할 산으로 비자가 남았다.. 2주 뒤면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되어서(벌써 2년이 지났다니!) 결혼식 끝내자마자 냉큼 비자 지원서류부터 냈다. 비자 센터 예약 잡기가 힘들어서 하마터면 맨체스터까지 갈뻔했는데 다행히 오늘 아침 크로이든에 있는 비자센터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부디 무사히 비자 연장도 끝낼 수 있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