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레미 진심일기 3편
1화: 4평 방구석에서 시작한 땅콩버터 브랜드 이야기
2화: 불길 속에서 브랜드를 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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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데
제조사 차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이 말씀 드리기 너무 죄송한데요…”
그 목소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달까지만 제품 생산 가능할 것 같습니다.
xx마트도 거래를 종료했고,
다른 유통도 다 빠질 것 같아서…
마지막 원료로 한 번 더 제조하고, 공장 문을 닫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2년 가까이 함께했던 첫 제조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초기엔 대표님과 소통했지만,
이후엔 퇴사한 뒤 실무자였던 차장님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맡아왔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던 분이었다.
고객 그 이상으로 날 챙겨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멍하니
사무실 천장을 한참 바라봤다.
망했다는 생각보다
‘다시 공장을 알아봐야겠다’는 현실적인 결심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
왜냐하면,
1편에서도 말했지만
제조사를 새로 찾는 일은 정말 고된 여정이기 때문이다.
견적을 받고, 비교하고, 샘플 요청하고,
공장까지 발품 팔며 돌아다니는 그 일련의 과정.
그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이전 제조사의 마지막 제품까지 다 팔고 나니
창고는 텅 비었고, 매출은 0원이 되었다.
통장에 있는 잔액은
딱 ‘새로운 제조사에서 최소 수량으로라도 한 번 찍어볼 수 있는 정도’.
그것도 몇 달은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브랜드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나는 위탁 판매를 시작했다.
레미레미 스마트스토어에서
유기농 아보카도, 토마토 같은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직접 박스를 싸서 보낸 건 아니었고,
농산물 유통 플랫폼을 통해
위탁 배송 시스템으로 진행했다.
제품 촬영은 직접 했고,
상품 소개도, 상세 설명도 내가 다 썼다.
‘아보카도 쉽게 까는 법’,
‘아보카도 후숙 보관법’ 같은 정보성 콘텐츠도 만들며
레미레미 SNS와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했다.
그건 단순히 장사라기보단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나 혼자만의 버티기 루틴이었다.
그때 내 옆엔 지금의 아내,
그 당시엔 여자친구였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새벽부터 과일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들이… 이상한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갑자기 아보카도랑 토마토를 팔기 시작하면,
원래 하던 거랑 너무 결이 달라서 이상하게 볼 수도 있잖아.”
그녀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흐트러질까 봐 걱정했다.
그 말이 백 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건… 브랜드를 지키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실 나도 걱정은 됐다.
‘사람들이 떠나가면 어쩌지’,
‘브랜드 이미지가 흐려지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땐 방법이 없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 하나가
모든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녀의 걱정은 결국
내 안의 불안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걱정이 있었기에,
나는 콘텐츠 하나, 소개 문구 하나에도
더 신중하게, 더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다.
몇 달이 흐른 후,
푸드위크라는 식품 박람회에 참가했다.
겨울이라 두툼한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내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벤더사, 바이어, 일반 관람객들이
북적이는 실내.
열기와 긴장감, 욕망이 얽힌 그 시장통 같은 공간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찾았다.
최근까지 함께 일했던 새로운 제조사 대표님과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셨고,
현장에서 바로 샘플 작업 이야기가 오갔다.
며칠 뒤 정식 미팅이 이어졌고,
그렇게 레미레미는 약 3~4개월의 공백 끝에
다시 제품 생산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중요한 걸 배웠다.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시스템이 없으면 브랜드는 무너진다.
한 제조사에 모든 걸 의지하면
그곳이 흔들릴 때
나도 같이 흔들린다.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공장, 원료, 생산 일정…
이 모든 게 시스템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땐 백업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교훈 덕분에
나는 지금도 제품 출시나 생산 시스템에 대해
더 집요하게 고민하고,
플랜 B와 C까지 준비하려 한다.
브랜드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도 지켜야 한다는 걸,
나는 그 시절에서 배웠다.
그 혼란의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확신했다.
이 브랜드는 쉽게 꺼지지 않을 거다.
이젠 정말, 내 아이 같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 같은 존재.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비슷한 막막함 속에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그 구멍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당장 눈앞의 생존을 선택하면서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4화. 레시피북을 출간하게 된 뜻밖의 계기
벾에 써놨던 그 해의 목표로 시작된
레미레미의 첫 번째 책 출간 이야기.
다음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