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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르셀로나 여행 마지막 날

by Jason

바르셀로나 여행 마지막 날


오늘이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오늘 밤만 자면 이 집에서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한테는 상당히 불편한 숙소였던 것 같다. 아들이 세탁기 돌린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바르셀로나가 덥지 않아서 땀을 흘릴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속옷 위주의 빨래만 하게 되었다. 여행 온지 3일밖에 안 되어서 그렇게 빨래가 많지는 않았다. 세탁기 돌리고 건조대에 다 널고서 출발하니 시간은 벌써 10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bar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가격이 인당 3유로 밖에 안 되었다. 스페인을 여행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페인의 동네마다 있는 bar라는 곳이 우리로 따지면 동네 사랑방쯤 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모여서 간단한 커피와 함께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거의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같이 스페인 식사시간과 맞지 않는 사람들은 이용하기 편리했다. 또 가격이 저렴하여 배낭여행 온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 같았다.


일단 고딕지구로 가서 카테드랄 성당을 구경하였다. 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는데 여기에 카탈루냐 양식도 혼합되었다고 한다. 13세기에 시작해서 15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성당이다. 한눈에 보아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멋진 곳이었다. 또 이 지역이 구시가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지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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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각 도시마다 유명한 성당들이 있는데 모두 카테드랄이라고 부른다. 카테드랄은 가톨릭 교회의 대주교가 있는 성당을 뜻하는데, 스페인 여행 중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톨레도와 세비야에서도 멋진 카테드랄을 만나게 되었다. 스페인을 떠나서 이탈리아로 가면 이들은 이런 성당을 두오모라 부른다. 두오모는 영어로 돔(dome)의 어원이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두오모는 피렌체와 밀라노이다. 원래는 이 카테드랄이라는 용어가 프랑스에서 사용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카테드랄 보다는 노트르담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보다 익숙하다. 이런 의미를 모르면 스페인 여행 중에 사방에서 카테드랄을 만나게 되고, 이탈리아에 가면 가는 곳마다 두오모 성당이 나오고,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 그리고 내 경우는 나중에 방문하는 룩셈부르크에서도 노트르담이 나와서 혼란스러웠다


이미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내부에 들어가 보니 외부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내부를 둘러본 후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오게 된 것과 그것도 아들하고 같이 온 것, 아직 초반이지만 잘 지내고 있는 점등 감사할 것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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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아들과의 여행에서 감정이 상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나에게 어느 날 성경의 예배소서의 한 구절이 내 마음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예배소서 6장의 1-3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우리가 늘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 구절이 아닌 4절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절에서도 교회에서 주로 강조하는 부분은 뒷부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라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내 눈을 사로잡은 부분은 앞부분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라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식을 노엽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아들을 내가 섬기자 였다. 내가 섬기는데 아들이 노여워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때부터 여행 다녀온 후에도 나의 자식들 대하는 태도는 절대 노엽게 하지 말고 섬기자 이다.

정말 하나님이 나한테 절묘한 신의 한 수를 가르쳐 주셨는지 그전까지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나와 자식들과의 관계는 이때부터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좋아질 거라 믿는다.

이런 좋은 가르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도를 마치고 옆을 보니 어느새 아들도 옆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다. 교회라면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아들이었는데…


성당에서 나와서 고딕 지구를 구경하는데 이런저런 건물들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좁은 골목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는 골목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아파트가 아니고 다들 단독주택이었으므로 좁은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아이들은 모여서 놀았다. 그 당시 모든 놀이가 골목길에 선을 긋고 하는 방식이었고 그중에서도 리더 격인 아이를 골목대장이라고 불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구 시가지의 좁은 골목은 아련한 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있던 나에게 아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움직이자고한다. 다시 해안 도로까지 나와서 걸어가던 중에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동물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도 규모가 상당한 것 같았고, 갑자기 아들이 오랫 만에 동물원을 보고 싶다고 하였고 나 역시도 은근히 흥미를 느꼈다. 아이들 어릴 때는 동물원을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들 크고서는 전혀 가본 기억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동물원은 거기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2명 입장료로 39.2유로를 지불하고 들어가 보았다. 동물들도 좋았고, 안의 수목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공기도 정말 상쾌했다. 빡빡한 여행 일정 중에 이런 망중한을 즐긴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아마도 이런 점들이 여행사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을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앉아서 쉬기도 하고 은근히 더운 날씨에 슬러시도 사 먹으면서 꽤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해변으로 나와서 마레 마그넘(Mare Magnum)이라는 대형 쇼핑몰을 구경했다. 명품들은 아닌 것 같고 처음 보는 브랜드 들인데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다. 아이쇼핑을 하다가 멋진 선글라스가 10유로 밖에 안 하길래 하나 샀는데 나중에 쓰고 다니다 보니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눈이 부시다는 점이다. ㅋㅋ 그래도 폭망이라고 하기에는 싼 가격이 위로가 되었다. 또 디자인은 제법 괜찮았고… 해안에는 곳곳에 벤치들이 잘 조성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데도 앉을자리는 있었다. 나중에 다른 나라들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스페인이 항상 벤치를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항상 쉴 곳이 있었다. 그 당시는 별로 의식을 못했었는데 나중에 다른 나라를 다닐 때면 항상 스페인 생각이 나고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광장마다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항상 있었고…

마지막 날이라 더 구경하는 것은 그만두고 해변에서 핫도그도 사 먹으면서 산책도 하고 앉아서 아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마지막 바르셀로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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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람브라스 거리에서 제대로 된 저녁을 먹자고 하였더니 아들은 또 비싸지 않겠냐고 하면서 부정적이었다. 비싸도 아빠가 사지 너보고 내라고 한 것 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 쓰냐고 핀잔을 주고는 여행 와서 처음으로 내가 리더가 되어서 식당으로 갔다. 마침 빠에야와 피자 그리고 2개의 타파스와 맥주를 패키지로 한 메뉴가 있어서 주문하고 아들과 잘 먹었고 맥주를 추가로 더 먹으면서 람브라스 거리와 많은 인파들을 구경하고 또 바르셀로나 여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계산서를 받아보니 41.8유로가 나왔다. 처음 패키지 메뉴 값 보다 한참 비싼 가격이라 아들이 펄쩍 뛰면서 알아보더니 추가로 마신 맥주 값을 엄청나게 비싸게 받았다면서 씩씩 거린다.


저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은 부모 돈을 아무 생각 없이 쓴다고 하는데 내 아들이 철이 든 것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어릴 때 철없이 사달라고 하고는 울면서 조르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아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아들이고 나 역시 대견하게 생각하지만 철이 든다는 것은 부모를 떠나서 독립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니 한편 섭섭하기도 하다.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실감 나기도 하고…


람브라스 거리를 마지막으로 걸으면서 미리 봐 두었던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먹고 숙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들과의 이번 여행이 정말 행복하다고 새삼스럽게 느낀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첫 여행지인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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