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날이다.
산츠(Santz) 역에서 8시에 기차를 타야 해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다들 잠에 취해 있는 집에서 식탁에 열쇠를 놓고 방명록 같이 되어 있는 종이에 감사하다는 짧은 글을 남기고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침 이른 시간에 아들과 나는 큰 짐을 하나씩 굴리면서 전철역까지 갔는데 아시겠지만 작은 벽돌 스타일의 돌들을 타일처럼 붙여 만든 유럽의 울퉁불퉁한 도로는 정말 큰 짐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객들에게는 고행이었다. 이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의 다 관광객들로 다들 큰 짐들을 들고 다녔는데 이런 사정을 경험적으로 아는 유럽인들은 큰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녔다. 마치 우리나라 군대에서 완전 군장하고 행군할 때의 모습인데 그렇게 다니는 그들이 부러웠다. 이렇게 고생해서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고 이 고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에스컬레이트가 있는 지하철 역에서는 할렐루야가 저절로 나오고 계단만 있는 역에서는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내경험적으로 2개월 동안 14개국을 여행할 때 에스컬레이트가 있는 역이 약 50% 정도였던 걸로 짐작된다. 계단만 있으면 나와 아들은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굴리기도 무거운 가방을 번쩍 들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고, 또 올라가기도 하였다.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백일섭 씨 경우는 계단만 나오면 한 번씩 성질을 내고 그러면 이서진 씨가 해결을 해 주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들을 노엽게 하지 말자는 나의 다짐은 내 짐보다는 오히려 아들 짐까지 들어줄 판이었다. 물론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고생해서 산츠역에 도착하자 아들이 나보고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고는 번호표를 뽑아 들었다. 이미 이른 시간인데도 역은 인산인해였다. 순서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유레일패스는 그냥 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오늘이 첫 개시일이기 때문에 창구에서 몇몇 절차를 거쳐서 사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그냥 타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유레일이 아닌 스페인. 포르투갈 패스라 한다. 이 패스를 4일 끊었고, 유레일은 기간으로 1개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 패스 3일 이렇게 끊어 왔다고 한다. 우리 일정은 포르투갈 여행 후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는 것인데 그때부터는 유레일 패스를 사용한다고 한다.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 서창구로 간 아들은 담당자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모든 절차를 완료하고 나에게 왔다. 그동안 나는 편히 쉴 수 있었고, 백일섭 씨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렸다. 영어로 이런 모든 절차를 너무도 쉽게 처리하고 돌아오는 아들이 대견하고 믿음직했다. 내가 아들 나이일 때는 외국에 한번 나가보지도 못했는데 외국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아빠보다 100배는 우월해 보였다. 이런 것도 아들과 여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제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사전 짐 검열이 비행기 탈 때보다 더 까다로운 것 같았다. 불편하긴 했지만 테러가 기승을 부리는 때를 감안하면 오히려 든든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시설이 훌륭해서 놀랐는데 아들이 여기가 1등석이라고 한다. (명칭이 나라마다 틀려서 어떤 나라는 1등석이고 또 다른 나라는 1등석 위에 비즈니스 석이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유레일을 할인된 가격에 탈 수 가 없다고 한다.(26세까지만 가능) 그래서 따로 앉아 가기도 뭐해서 같이 1등석을 구입하였다고 하는데 경비 절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들이 늙은 아빠 모시고 다니느라 본의 아니게 비싼 1등석에 타고 다니게 되었다.
나는 이런 기차 1등석이 첫 경험인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음료와 간단한 쿠키나 빵을 서비스해 주었고 탈 때마다 이어폰을 지급해 주어서 나중에 내 짐에는 이어폰만 가득 있었다. 자리도 너무 훌륭했고 특히 이코노미 석에 비하면 자리의 앞뒤 간격이 넓어서 다리가 긴 우리 부자는 너무 편하게 기차 여행을 했다. 내 나이 때의 분들이 유럽 여행을 가신다면 1등석 기차여행을 강추하고 싶다. 자리마다 전기 코드도 다 있어서 아들은 기차만 타면 가는 내내 스마트 폰을 충전하면서 다녔다.
도중에 표 검사를 다니는데 내 경우는 아들이 다 해 주어서 편하긴 했는데 아들만 자리에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벌써 상당히 아들에게 의존적인 상태로 돌입해 있었다. 나를 보고는 표를 안 보는 경우도 많았는데 아들의 경우는 반드시 표 검사를 했다. 젊은 학생이 이코노미 석 티켓을 가지고 비즈니스 석에 타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 그 단속이 엄격하였다.
8시에 바르셀로나를 출발한 기차는 11시 13분이 되자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정신없이 움직여서 마드리드에 도착한 우리는 큰 짐을 가진 채로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브런치를 먹었다. 항상 그렇듯이 빵과 콜라를 먹었는데 9유로가 나왔다. 유럽에서는 물도 돈을 주고 사려니 물이 공짜인 한국 정서에 젖어 있는 우리는 콜라나 맥주를 마시게 되지 물을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아들은 전철로 향했고 나는 그 뒤를 졸졸 쫓아가서 탔고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니 그랑비아 (Gran Via) 역이었다. 큰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그리고 바르셀로나와 전혀 다른 마드리드의 더위에 상당히 지쳐있는데 지도를 보며 집을 찾던 아들이 여의치 않은지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결국 집주인이 역까지 나와서 우리를 안내했는데 상당히 귀찮아하는 모습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집주인과는 다르게 인텔리 느낌이 나고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로운 인상이었는데 조금 까다로워 보였다. 나는 뒤쫓아 가고 아들과 집주인이 나란히 가면서 몇몇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나중에 다시 전철역으로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이것도 처음이라 그렇지 나중에는 아들이 다 알아서 하니깐 신경 쓰지 않고 다니게 되었는데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는 혼자 숙소를 찾아가지 못해서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골목으로 이리저리 꺾더니 집에 도착했다.
역시 큰 열쇠로 출입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자기 집은 5층이라고 한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큰 가방을 들고 층계로 5층을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극기 훈련 수준이다. 이럴 때마다 아들은 나를 보면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마치 계단만 나오면 이서진 씨가 백일섭 씨에게 미안해하듯이…
아들도 처음이라 몇 층인지는 신경 못 썼다고 한다. 하긴 한국에서는 30층인들 어떠하리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는데… 미안해하는 아들을 위로하고는 힘든 내색 없이 5층까지 무거운 가방과 씨름하면서 올라갔다.
사실 이런 경우도 내가 짜증을 내지 않으니 아들이 오히려 내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 하지 만일 내가 왜 이런 것도 생각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화를 내면 아마도 아들은 미안해 하기는 커녕 반감만 생길 것이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테고.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한테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곧 내가 그 상대방을 대한 태도의 거울일 것이다. 상대방이 나한테 싸늘하다면 그것은 곧 내가 상대방에게 따뜻하지 못하게 행동했다는 것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런 원리는 부자 관계에서도 당연히 성립된다. 자기 자식이라고 마구 대했다가는 절대로 자식은 부모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모 자식 간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은 너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안방은 집주인이 사용하고 다른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침대도 크고 잘 정돈되어 있었고 방도 좁기는 해도 바르셀로나의 숙소에 비하면 5성급이었다. 집주인은 깔끔한 성격답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잔소리 같이 늘어놓았다. 먼저 욕실을 소개하면서 깨끗이 사용하라고 하였고, 사용한 수건은 반드시 방으로 가져가지 거실에 놓지 말라 하였고, 우리 침실의 창문도 낮에는 절대 열지 말라고 하였다. 낮에 창문을 열면 뜨거운 마드리드 기온을 감당할 수 가 없다고 한다. 커튼까지 치고 최대한 햇빛을 막고 저녁부터는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고 한다. 그런데 방충망이 없어서 바르셀로나에서 고생한 모기 걱정을 했더니 이곳은 모기가 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 당시는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모기가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주변에 습지가 없고 유럽의 여름은 우리와는 다르게 습기가 업고 건조해서 그렇지 않나 생각되었다.
집주인이 나가자 아들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데 나는 오히려 이렇게 깔끔한 주인이 좋다고 하면서 아들을 위로했다. 일단 짐을 풀기도 전에 아들은 스마트 폰부터 집어 들고는 집주인이 적어준 와이파이 비번을 입력하고는 바로 각종 SNS에 몰입하였다.
아들은 몇 층인지는 챙기지 않았어도 와이파이 유무는 꼼꼼히 따졌는지 가는 곳마다 와이파이가 가능했고(바르셀로나도 집은 누추했지만 와이파이는 잘 터졌다) 와이파이가 유료인 호텔에서는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구입해서 스마트 폰에 매달리곤 했다. 밥은 없어도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도 없는 것 같았다.
오후 일정을 시작하면서 마드리드가 처음인 아들이 나한테 물어봐서 나는 우선 왕궁을 가자고 했다. 아들이 숙소 위치를 중앙 지역으로 잘 잡아서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여기서도 지하철 안 타고 도보로 시작했다. 왕궁에 도착하니 역시나 좋았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여러 왕궁들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마드리드의 왕궁이 나는 제일 좋았다. 가장 화려하면서도 내부 인테리어 역시 내 취향이었다.
펠리페 5세의 명으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이라 한다. 특히 이 왕궁은 프랑스의 루브르 궁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지었다고도 한다. 왕족들이 사용하던 식기나 여러 물건들도 관람할 수 있는데 하나 같이 고급스럽고 온갖 값비싼 장식들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스페인 방문했을 때 스페인 국왕이 이 왕궁의 연회장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연회장의 샹들리에는 정말 아름답다. 현재 국왕은 평상시에는 교외 지역에 새로 건설한 왕궁에 거주하면서 이곳은 관광용으로 개방하고 있는데 상당한 입장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입장료를 구입했는데 10유로였다. 5 년 전 왔을 때는 7유로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스페인 물가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유럽의 왕족들은 아직도 재산이 상당하고 가지고 있는 기업들도 대단해서 재정 상태가 튼튼한 듯하다.
다시 보아도 여전히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5년 전 그랬듯이 왕궁 안의 기념품 파는 곳의 물건 역시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머그컵을 비롯해서 몇 가지 간단한 기념품을 샀다
왕궁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낸 후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바르셀로나와 같이 이곳 마드리드도 광장들을 중심으로 되어있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광장은 돈키호테 동상이 있어서 우리한테는 유명해진 곳이다.
5년 전 이 광장은 사람들로 붐비면서도 운치가 있는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부분적으로 공사도 하고 있고, 수많은 작은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약간 나는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스페인의 특징인 앉아 있을 곳은 많아서 이곳 마드리드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오늘 관광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다시 그랑비아 거리를 통해서 숙소 방면으로 걸어갔다. 그랑비아란 큰길이라는 뜻인데 여기가 마드리드의 중심인 듯 양옆으로 고급 호텔, 백화점, 명품샵 등이 자리 잡고 있어서 화려한 도시의 느낌이 충만한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2곳만 다녔지만 아들은 두 곳 모두 초행길인데도 중심지에 숙소를 잘 잡았는데 아마도 숙소를 예약할 때도 자료조사를 상당히 한 모양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여행하기가 편했는데, 마드리드에서도 중심지인 그랑비아 거리의 전철역 부근에 숙소가 있어서 돌아다니기가 용이했다.
숙소로 오는 중에 여러 사람들이 전단지를 돌리며 식당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중1인당 9.95유로 밖에 안 하는 뷔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속는 셈 치고 들어가 보니 의외로 괜찮았다. 오랜만에 풍족한 저녁을 먹는 우리는 그야말로 폭풍 흡입을 했다.
숙소에 와서 샤워하고 9시부터 브라질에서 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축구 중계를 시청했다. 거실의 TV에서 봤는데 마침 집주인이 외출하고 없어서 아들에게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허가를 받고 보라고 했다. 연결이 되어서 허락을 득하고 보았는데 나중에 이 집주인이 air b&b 에 우리를 좋은 게스트로 평가하였다고 한다. 깨끗하게 방을 사용하였고, 거실의 TV를 볼 때도 허가를 득하고 보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썼다고 한다. 우리만 집주인과 숙소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도 게스트를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도 스페인 사람에게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서 뿌듯했다.
축구는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간의 혈투에도 승부 가나지 않아 페널티 킥 승부를 해서 스페인이 이겼다. 스페인 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나도 모르게 스페인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