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드리드 여행 3일째이다. 실제로는 마지막 날로 내일은 당일로 톨레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5년 전 톨레도를 다녀온 나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가도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보지 못한 세고비아를 가보고 싶었는데, 아들이 한참 책을 보고 생각하더니 톨레도를 가보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어제까지 마드리드를 거의 다 둘러본 관계로 오늘은 느긋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 계획은 마드리드 시내 투어 버스를 타고 그동안 다녔던 곳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 투어를 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몸을 혹사했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그 보상을 받는 날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날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걷지 않고 편안하게 여행을 하게 되어서 2-3일 정도의 강행군으로 지친 몸도 추스르고 다음 여행을 위한 체력도 비축하게 되어서 좋고 또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장소들을 버스로 한번 둘러보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아들이 자기 혼자 왔더라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테고 또 버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못했을 텐데 아빠 덕에 좋은 여행을 한다고 이야기해 줘서 뿌듯했다.
이에 못지않게 아들이 아빠랑 같이 다녀서 좋았던 점이 생각지도 못한 축구장 투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스페인의 두 명문구단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나중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첼시 구단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탁기를 돌리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인 그라나다에서는 B&B가 없어서 작은 호텔로 예약했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 반드시 세탁기를 돌려야 했고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집주인에게 톨레도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어보았다. 대학교수인 집주인은 인텔리이고 인상이 깐깐하고 상당히 깔끔했다. 그래서 아들은 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고 나 역시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집이 깨끗하니 너무 좋았다. 집주인 역시 우리를 약간 피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톨레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영어에 영 자신이 없어하는 것 같았고, 이전 바르셀로나 집주인과 다르게 대학교수라는 위치 때문인지 문법에 맞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과는 웬만하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점이 내 아들한테는 무시당한다는 오해를 들게 하였으리라. 내 추측은 정확했는데 왜냐하면 나중에 이 집주인이 게스트인 우리를 그동안 만났던 많은 게스트 중 최고라고 평가를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였고 사소한 것을 사용할 때도 반드시 허락을 받았다는 등등의 예를 들면서 칭찬하였다고 한다.
집주인은 톨레도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기차를 이용할 것을 추천했고 그중에서도 급행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5년 전에는 버스를 이용해서 가 보았는데 이번 유럽 여행에서 아들 덕분에 기차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나도 기차 여행이 좋았다.
기차역은 아토차 역으로 어제 레티알 공원 가는 길에 먼발치에서 봤던 곳이었다.
톨레도 가는 길은 집주인 의 도움으로 결정하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서 오늘은 오후 늦게나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주인은 자기가 세탁이 끝나면 빨래를 널어줄 테니 나가 보라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세탁물이 주로 속옷 위주라서 조금 찝찝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호의를 감사히 받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첫인상은 별로였고 또 쌀쌀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늦게 나온 탓인지 태양이 너무 뜨거웠고 아스팔트가 이미 달구어져 있었는지 올라오는 복사열이 장난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우리의 아지트(?)인 Pan&Company에 들어가서 4.95유로인 아침 셋 메뉴를 먹었다. 샌드위치와 에그프라이 그리고 베이컨이 있는 제법 먹을 만한 브런치다. 오늘 일정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는데 오늘은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한 날이니 편안한 날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밖에 나와보니 그랑비아 역이 번화가인 관계로 앞의 부스에서 시티투어 버스 티켓을 팔았다. 1 day에 21유로, 2 day에 25유로였다.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다.(바르셀로나는 26유로, 38유로) 여기서 고민한 것이 사실 내일 톨레도에 가니 오늘 하루만 시티투어 버스가 필요할 듯했는데 하루를 더 사용하는 것이 4유로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였다. 결국 2 day 티켓을 끊었다.
바로 버스를 타고 이틀 동안 걸어 다녔던 시내를 편안히 앉아서 둘러보니 참 좋았다. 버스 2층으로 올라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맨 뒤편에 앉았다.
시티투어 버스도 타면 안내방송을 들으라고 바로 이어폰을 준다. 그러다 보니 아직 여행 초기 인데도 기차에서 받은 것 까지 더하여 여기저기 이어폰들이 굴러 다닌다.
그동안 보았던 낯익은 유적지들을 지나쳐서 조금 가니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서 내려서 구장 투어를 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다. 예전에 나는 레알이 영어의 real을 스페인식으로 발음하는 줄 알았는데 영어의 royal의 뜻이다. 즉 왕으로부터 왕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사 받은 구단이다. 1905년 창단된 팀이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고, 자국리그 32회 그리고 유럽의 챔피언 리그에서도 10회나 우승을 차지한 그야말로 명문 구단이다. 지금은 FC바르셀로나에 조금 밀리는 듯한 양상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상당히 좋아한다.
구장에 들어가기 전 근처 옷가게 진열장에 알 수 없는 스페인어가 크게 쓰여 있었는데 앞에 50%라는 숫자는 50% 세일 중이라는 짐작이 가능케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흰색의 반팔 티셔츠가 9.9유로 밖에 안 해서 바로 구매했다. 2개월 간의 여행인데 생각보다 내 짐이 많지 않을 걸 보고 집사람이 걱정했는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곳에서 기념이 될 만한 옷을 사서 현지에서 입고 다녔다. 나중에 최종 여행지인 영국에서 까지 이런 전략은 계속 유효했으므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기념이 될 만한 옷들이 많았음에도 짐이 생각보가 넘쳐 나지는 않았다. 아내가 감탄하면서 자기도 앞으로 여행 다닐 때 참조하겠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 구장 투어 입장료는 19유로였다. 5년 전에는 15유로였었는데…바르셀로나 FC구장 투어가 23유로였던 것에 비하면 저렴하였다. 시티 투어 버스 요금도 그렇고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이고 또 화려한 것에 비하면 모든 여행 관련 비용이 바르셀로나보다 저렴했는데 아마도 그만큼 관광객들이 마드리드 보다 바르셀로나를 더 선호하는 현상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시 5년 전에도 그랬지만 레알 마드리드 구장 투어는 매력적이었다. 먼저 구장 규모가 상당했는데 약 8만 5천 명을 수용한다고 한다. 그라운드까지 내려가 보면 잔디가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선수들 라커룸도 5년 전에는 원정팀 라커만 공개했었는데 이번에는 홈팀 라커룸도 공개했고, 들어가는 입구에서 좋아하는 선수를 선택하면 그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 같이 합성을 해 주는 서비스가 생겼다. 사진을 파일로 받을 수 있냐고 하자 안 된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12유로를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진 합성을 즐거워하였고,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 자국 선수가 있는 나라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그 선수와의 사진을 만드는 것 같았다. 물론 최고의 인기는 호날두였고…
선수들이 경기후 샤워하는 공간도 깨끗하고 너무 고급스럽게 단장되어 있었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간이침대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관중석과 선수들 의자에도 앉아보고 하는 동안 아들은 상당히 즐거워했다.
구장 투어 후 근처에 있던 버거킹에서 1.9유로 특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아들의 관찰력 덕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먹다 보니 9유로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나왔다. 결국 이것이 우리의 저녁식사가 되었는데 알뜰한 아들 때문에 식대를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가벼워진 식대와 반비례로 내 마음은 무거워져 갔다.
다시 시티 투어 버스 타고 다른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숙소로 오니 오전에 세탁기에 넣고 돌렸던 세탁물들이 건조대에 깔끔하게 널려 있었다. 집주인에게 너무 고마웠다.
늦은 시간에 집주인은 영화 보러 간다고 외출했고 혹시나 해서 안방 문을 살짝 열어보니 잠겨 있지도 않았다. 우리를 믿어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집에 생면부지의 손님을 두고 집을 비우기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은데… 더군다나 이 분은 깐깐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인데
그래도 우리만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편해지면서 답답한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스마트 폰으로 하루 동안 밀렸던 각종 내용들을 검색하고 카톡에 답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즐겼다.
국내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까지 다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 역시 와이파이 없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