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라나다 여행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하는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날은 더워서 오늘 하루는 고생 좀 하겠구나 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조식을 먹으러 4층으로 올라갔다. 항상 그렇듯이 buffet 식으로 차려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자리에 앉으라 하고는 바로 식사를 준비해서 가져다주었다. 토스트 2장과 잼, 버터, 우유 그리고 시리얼까지 가져다주었고 커피까지 손수 만들어서 주었다. 식사는 정성이 깃들여 있었고 깔끔했다. 이런 저렴한 호텔 숙박비에 조식까지 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직접 차려주기 까지 하니 상당히 대접받는 느낌이고 위의 도시들과 다른 안달루시아 지방만의 인심같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고된(?) 일정에 대비해서 복장을 철저히 갖추고 모자까지 쓰고 선블록 크림도 빠짐없이 두껍게 바르고는 10시경 호텔을 나섰다.
아들이 한국에서 미리 알람브라 궁전의 표를 인터넷을 통해서 예매했다고 한다. 이 표는 아무 때나 입장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명시가 되어 있고 무엇보다 나스르 왕조 궁전의 입장 시간이 찍혀 나오며 이 시간은 반드시 엄수해야 한다. 만일 이 시간을 놓치게 되면 티켓이 있어도 입장이 안 된다.
아들이 예매한 티켓은 오후 시간이고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은 17시 30분이었다. 따라서 오후 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2시에 입장하기로 하고 오전에는 알바이신(Albaicin) 언덕을 간다고 한다. 어제 보아둔 31번 버스를 타고 알바이신 언덕으로 향했는데 요금은 버스 기사에게 직접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한참 오르자 알바이신 언덕이 나왔는데 이곳은 한마디로 알람브라 궁전의 맞은편 언덕이라 생각하면 된다. 알바이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원래는 아랍인들이 살던 주거지역이었고 그래서 그라나다의 옛 건물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의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맞은편 언덕에는 원래 요새만 있었고 지금의 이 자리에 왕궁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중심지에는 라르가 (Larga) 광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과 잡상인 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항상 이런 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다시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와보니 좁은 골목길이 있는 구 주거지역이 나타나는데 골목이 좁고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길을 잃어버릴 까 봐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였다.
어릴 때 골목문화에서 살아온 나는 이런 곳에만 가면 옛 추억에 잠겨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있었고 어릴 때부터 아파트 문화에 익숙한 아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누에바 광장으로 돌아와서 알함브라에 갈 오후 시간까지 시간이 있으므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이 광장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와 같은 대도시의 광장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상당히 운치 있는 곳이었다.
오후 1시경 알함브라를 가기 위하여 시티 투어 버스를 탔다. 오전에 이용했던 미니 버스도 알함브라를 가는 노선이 있었으나 우리가 2일 치 표를 구입한 시티 투어 버스 역시 알람브라 궁전을 갔다.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외관은 붉은빛을 띠고 있다. 1238년에 나스르 왕조의 초대 왕인 알 갈리브의 선정으로 경제가 안정되면서 지은 궁전이라 한다. 그 후대 왕들도 계속 공사를 진행하였고, 유수프 1세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곳에 귀족을 중심으로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멋진 궁전도 앞서 말한 대로 레콩키스타에 밀려, 페르난도 2 세왕과 이사벨 여왕에게 저항도 못해보고 그냥 내어 주었으니, 그 당사자인 보아브딜 왕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런데 이 보아브딜 왕 말고도 이곳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또 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애절한 멜로디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프란시스코 타레가이다. 그는 그 당시 이루지 못한 사랑에 상심하여 여행을 하던 중 알람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어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소리와 기타 선율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는 이곡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곡을 만든 사람의 아픔이 담겨 있는 곡인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 앞에 도착하니 뜨거운 햇살 아래 수많은 인파가 집결하여 있었다. 그라나다 시내는 한가했는데 어디서 이 많은 인파가 쏟아졌는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아마도 그라나다 시내는 별로 볼 것이 없으니 알람브라 궁전만 관광하는 단체 관광객들인 것 같다.
여기저기 많은 줄들이 보였는데 어디서 표를 파는 건지 어디로 입장을 하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아들은 나를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으라 하더니 어디론가 가서 금방 표를 2장 가지고 왔다. 한국에서 이미 표를 예매한 관계로 예매할 때 결제한 크레딧 카드를 기계에 삽입하니 바로 표가 나왔다고 한다. 나 혼자 왔다면 꽤 고생했을 것 같았다.
오후 2시에 오후 관광객이 입장하기 시작하자 우리도 줄을 서서 입장을 했다.
나스르 왕조 궁전 관람 시간이 17시 30분이어서 그전까지 알람브라 궁전의 다른 곳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3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앞에서 말했던 나스르 왕조 궁전이고 다른 두 부분은 알 까사 바(Alcazaba)와 헤네랄리페(Generalife)이다. 나스르 왕조 궁전 관람 시간까지는 3시간 30분이 남았으므로 그 사이에 나머지 두 곳을 모두 둘러보기로 계획을 잡았다.
먼저 헤네랄리페는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헤네랄리페는 아랍어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대표적인 이슬람식 정원으로 인근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한 수로와 예쁜 분수가 있다.
이슬람에서는 낙원의 3대 요소를 물, 바람, 과실나무로 꼽는데 아무것도 없고 특히 물이 부족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없는 사막에서 생겨난 종교이니 이 3가지가 있는 곳이 아마도 천국일 것이다. 특히 물을 끌어와서 수로를 만들고 주변에 분수를 만들어 놓는 등의 이유로 이상하게 궁전 안에 들어오면서부터 더위를 거의 못 느끼게 되고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가뜩이나 더운 여름철에 왕들은 이곳 별장에서 피서를 했을 것 같다. 처음부터 기대 이상의 황홀한 풍경을 보여 주었는데 나에게는 이전까지 나에게 가장 매혹적이었던 곳인 러시아 쌍떼뻬제르부룩의 여름궁전 안에 있는 분수정원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이중에서도 아세키아(patio de la Acequia)라는 곳이 하이라이트 인 것 같다.
아세키아란 수로라는 의미이고 세로형의 긴 정원의 가운데에 긴 수로를 만들어 놓았고 양 옆에는 분수를 설치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내고 있으며 주변은 예쁜 꽃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음으로 알까사바(Alcazaba)로 향했다. 이곳은 요새로서 원래 이곳에는 24개의 망루와 군인들이 생활하던 숙사,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이곳에는 요새만 있던 곳이었으니 당연히 이곳이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이곳은 사전 지식 없이 갔는데도 군인들이 지키던 곳이라는 짐작이 들게 만들어져 있다. 또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막사나 기타 방들의 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방금 지나 온정원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뜨거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물이 없으니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도 상당했다. 다만 언덕 위의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니 바람은 제법 불어왔다.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에서는 언덕 밑에 있는 그라나다 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다. 이곳을 지키던 군인들이 궁전에 있는 왕족과 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 그리고 내려다 보이는 그라나다 일반 서민들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나스르 궁전을 제외한 다른 곳을 어느 정도 구경한 후 아직 5시 30분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서 조금 한적한 곳에서 앉아 쉬었다. 상당히 더운 날 계속 야외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이 궁전의 정원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물과 나무들로 잘 조경되어있어서 더위를 피하게 해 주었다.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상상 이상의 감동이 있었고 무엇보다 더운 날씨를 걱정했는데 알람브라 궁전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게 될 알람브라 궁전의 백미인 나스르 궁전 입장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