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5분에 마드리드를 출발한 기차는 오후 1시 25분이 되어서 그라나다 역에 도착하였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한 설렘이란 여행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약간의 두려움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두려움 마저도 우리의 엔도르핀이 샘솟게 하는 즐거운 걱정이 아닐까?
이곳이 나에게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여행하면서 첫 번째로 숙소가 호텔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집주인과 함께 하면 여러 가지가 편치 않게 되는데 특히 샤워하러 오갈 때도 제대로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이곳은 방에 우리만의 독립된 욕실이 있을 테니 저절로 기대가 되었다. 아들은 그런 내가 염려스러웠는지 워낙 싸구려 호텔이니깐 아빠가 여태까지 다녔던 호텔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심지어는 아빠가 아무리 최악을 생각해도 그 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시골 간이역 같은 그라나다의 작은 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각오했던 뜨거운 열기가 훅 밀려왔고, 마드리드와는 전혀 다른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의 도시가 보였다. 이곳의 교통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문의를 했고, 우리 호텔의 주소를 본 직원은 택시를 권했다.
배낭여행의 본질에 충실하고, 아빠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배낭여행을 하겠다는 의지의 한국인인 아들에게 택시라는 글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톨레도 에서의 악몽이 되살아 났는지 적극 반대는 못하고 있는 아들을 내가 설득해서 택시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최초로 내 의견이 관철된 사건이 아닐까 싶다.
택시 줄에서 순서를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차례가 되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성분이 운전기사였는데 우리 호텔 위치가 그라나다 중심지인 카테드랄 주위라고 한다. 가면서 카테드랄을 알려주고 호텔 주소지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요금은 5유로 정도밖에 안 나왔다. 유럽의 도시들은 크기가 작아서 특별히 외곽으로 빠지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다녀도 요금이 그리 크지 않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던 아들도 막상 5유로가 나오자 만일 버스를 탔어도 이보다 저렴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만족해했다.
그런데 주소지에서 쉽게 눈에뜨일 것 같았던 호텔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호텔이 안 나타나는 것도 마치 제 잘못이나 되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찾고 있는데 주소지에 정확히 간 것 같은데 전혀 호텔이 아닌 건물이 있어서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나 역시 가는 곳마다 숙소 찾는데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둘이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저기 찾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아도 앞서서 보았듯이 전혀 호텔은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아들이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마치 약 1-2평 대지에 올린 5층 정도의 건물의 아주 작은 간판에 아들이 예약한 호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곳은 아까 호텔을 찾으면서 수십 번 보았던 곳인데 설마 호텔 간판이 이렇게 작을 까 싶어서 자세히 보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정말 이곳에 호텔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들어가 보니 작은 복도 끝에 데스크 하나가 있고 한 여성이 앉아 있다가 ‘올라!’하고 인사한다.
호텔이라 기대하고 왔던 나는 실망스러웠고 내심 지금까지의 B&B보다 못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떠나온 마드리드의 숙소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아들도 내 눈치를 보면서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사실 아들이 나한테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들 여행인데… 아들이 미안해하지 않게 하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애써 지었다. 그런데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있는 여성의 영어는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스페인 사람 중에서 베스트였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고, 호텔 소개와 즉석에서 지도를 꺼내서는 그라나다 여행에 관한 상세한 팁을 주었다. 어떤 사람이든 한번 대화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이 여성은 완벽한 영어 못지않게 상당히 논리적이고 빈틈이 없었으며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했다.
우리 방은 2층이었고,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조식은 4층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 4층에 있는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으며 호텔 투숙객들이 같이 사용하는 곳이니 음료수나 기타 내용물에 방 호수를 적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여행 중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방에 올라가 보니 상당히 깨끗했고 생각보다 넓었고(지금까지 숙소에 비해서) 화장실도 깨끗했다. 여행 떠나서 처음 가져보는 Private bathroom이었다. 4층에 올라갔다 온 아들은 그곳이 휴게실 같은 곳이고 투숙객들이 소파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음식을 조리해서 먹기도 한다고 한다. 갑자기 숙소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아지니 아들과 나는 기분이 업 되었다. 여행 다니면서 이럴 때마다 깨닫는 것이 행복이란 대단한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별 것 아닌 것에서 느낀다는 점이다.
이번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처음 오는 곳의 숙소를 교통이 가장 편리한 곳으로 또 낮은 가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훌륭한 곳으로 잡는 아들의 능력은 대단한 것 같다.
가벼운 마음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어졌고 밖으로 나간 우리는 근처 카테드랄에 먼저 가 보았다. 이 대성당은 그라나다를 함락한 후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1523년에 착공해서 180년이나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탑은 아직도 미완성이라 한다. 위의 도시에서 이미 유명한 카테드랄을 보고 와서 인지 쳐다보면서도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카테드랄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앞서 호텔에서 가르쳐준 버스 노선 30번과 31번이 있는지 확인했는데, 버스는 규모가 작은 미니 버스였다. 정겨운 시골 분위기가 났고 아기자기한 주변 모습들이 이미 다녀왔던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카테드랄 앞에는 우리가 도시마다 애용했던 시티 투어 버스도 있었는데 요금이 이틀에 18유로 밖에 안되었다. 바로 2매를 구입해서 오후남은 일정에 이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 시내를 한번 둘러보기로 하였다.
투어 버스를 타니 월요일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2층에는 자리 잡기가 힘들었는데 여기는 거의 사람이 없어서 2층 맨 앞쪽의 자리에 앉아서 도시를 둘러보았다. 2층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그라나다 시내도 한적했고 마드리드의 화려함과는 많이 대조적이었다. 위에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옆의 빈자리에 스마트 폰을 놓고 있었는데 이전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내일 우리의 예정지인 알람브라 궁전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역시나 이곳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카테드랄 앞에서 하차했다.
마드리드에서 우리의 귀중한 식사 장소였던 Pan&Company는 이곳에는 아예 진출이 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에 나와 아들이 좋아하는 미국 샌드위치 체인점인 Subway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무려 30센티미터에 달하는 샌드위치여서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먹었는데 옆을 보니 아주 어리고 몸이 슬림한 2명의 어린 소녀가 각자 30센티미터의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정말 스페인 사람들은 대단한 대식가 인 것 같다. 우리도 내일부터는 하나씩 먹기로 결의(?)하고 숙소에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그때서야 스마트 폰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생전 전화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현대의 삶이 모든 중요한 사항이 전화기에 입력되어 있기에 과거와 같이 전화번호부만 없어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기억을 되살려 보니 시티 투어 버스 안에서 옆의 빈 좌석에 놓고 있었는데 거기서 분실했을 가능성과 나중에 저녁을 먹은 Subway에서 놓고 나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는 달리 침착하게 자기가 다시 Subway와 투어버스 담당자에게 알아보겠다고 혼자 나갔다.
혼자 방에 있으니 더욱 마음은 심란하고 급한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도 어쩔 수 없었는지 잠시 후 돌아온 아들은 2곳 모두 확인해 보았는데 없다고 한다. 나도 포기하고 빨리 마음을 다 잡으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분실된 자료를 하나하나 되집어 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어느 부분까지는 내 노트북에 백업시켜 놓았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그 사이 계속 어딘가에 전화를 하던 아들이 갑자기 ‘Wait a minute!’을 여러 번 다급하게 외치더니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층계를 이용해서 번개처럼 거의 구르다시피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체격 좋은 아들이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복도에 시끄럽게 들릴 정도였고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올라온 아들은 전화기 찾으러 다녀오겠다고 한다.
아들은 계속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계속 받지 않던 전화기를 어느 순간 어떤 여성이 받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이야기하길래 황급히 뛰어 내려가 로비에 있는 영어 잘하는 직원에게 전화 통화를 하도록 부탁했고 상대편 여성에게 분실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찾아갈 장소들을 다 알아보고 아들에게 영어로 상세한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말할 장소까지 소상히 들은 아들은 다녀오겠다고 한다. 내가 같이 가려고 하니 그냥 방에서 쉬고 계시라고 하면서 옷 갈아 입고는 씩씩하게 바로 출발했다.
새삼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는 아들에게 감탄했고 또 고마웠다. 아니 고마웠다기보다는 존경스러웠다. 순간 두뇌 회전과 빠른 판단 그리고 민첩한 행동은 내가 그 나이였어도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았다. 아빠를 배려해서 방에서 쉬게 하고 본인이 뛰어 나가는 그 마음도 참 따뜻했고… 어릴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아들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아니 내가 가진 것보다 더한 따뜻함과 배려심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지금 아들 입장이었으면 상당히 귀찮고 짜증스러워했을 것 같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전세가 역전되어서 내가 아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 아니고 아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아직 내가 그렇게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나의 노화보다는 더 빠른 속도로 아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이것저것 계속 참견하고 지적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사춘기와 그 이후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나 소통의 부재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런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우매한 나에게 하나님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각인시키려 하신 것 같다. 정말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또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갈등도 없어지고 자식도 대우해 주는 만큼 빠르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날 이 전화기 분실 사건은 이번 여행이 내가 아들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 나를 모시고(?) 다니는 여행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전화기를 주었고, 감격한 나는 아들을 안아 주었는데 오히려 아들이 내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라 했으면 아들한테 전 재산을 물려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