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의 정원인 헤네랄리페와 요새인 알까사바를 둘러본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나스르 왕조 궁전을 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입장 시간이 5시 30분 이었으므로 그때까지 시원한 곳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역시나 스페인 답게 앉을자리도 잘 구비되어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앉아서 쉬던 공간은 옛 이슬람교도들의 모습을 한 모형물이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이슬람계로 보이는 관광객들(주로 터키나 북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모형물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다른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은 그들의 기세(?)에 눌려서 감히 접근해서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한다. 지켜보던 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세력이 충돌하던 이곳에서 다시 이들이 대치하는 모습으로 상상하면서 흥미롭게 보고 있었는데, 인원수에서 월등하고 단체 관광객들이었는지 한데 뭉쳐있는 이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삼삼오오 와 있던 기독교가 밀리고 있었다. 마치 로마 멸망 후 지중해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이슬람의 완승으로 승부가 끝나나 싶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언어가 들려왔다.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아들과 내가 여행을 떠나서 처음 보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크게 이야기하면서 온 아줌마들이 거침없이 이슬람 관광객을 밀어내고 금방 그 모형물을 점령했고, 조금 전까지 기세 등등하던 이슬람 관광객들은 바로 구석으로 속절없이 밀려났다. 주변의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시끄럽던 이슬람 언어를 더 큰 목소리의 한국말로 제압한 아줌마들은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계속 빨리 버스 타라고 할 때까지 완벽하게 그곳을 지배했다. 그들이 떠나자 갑자기 조용해졌고 그때까지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슬람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다시 모형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기독교계 유럽인들은 여전히 주변만 배회하고 있고…
나는 평소에 남의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특히 큰 소리로 떠드는 아줌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존경스러웠다. 아마 지하에서 이사벨 여왕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땅을 치며 아쉬워했을 것 같다. 한국 아줌마의 위력을 진작 알았더라면 본인이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하면서.
역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대한민국의 여러 요인 중에 아줌마의 힘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대한민국 아줌마 파이팅!!
나스르 궁전에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일어섰는데 이미 궁전 입구에는 긴 줄이 서 있었다. 일일이 표 검사를 하는데 우리 앞의 사람이 시간이 5시 30분이 아닌 5시로 되어 있었다. 그러자 그들을 줄에서 나오게 하고는 줄 맨 뒤로 가게 했다. 아예 관람이 안 되는지 아니면 맨 뒤에 있다가 인원이 남으면 들여보내 주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시간을 제대로 엄수해서 들어가야만 나스르 궁전을 볼 수 있다.
나스르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로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이었다고 한다. 198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메슈아르궁전(Sola del Mexuar), 꼬마레스(Comares)궁전, 라이온(Leones)궁전이 있는데 하나 같이 그 화려함과 정교한 장식을 자랑했고, 이런저런 왕궁들을 그런대로 보았다고 하는 나에게도 매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그런 황홀함이 있었다. 그 당시 이슬람교도들의 문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그런 엄청난 것이었음을 느꼈다. 막연히 옛날 역사를 배울 때 이슬람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유럽을 보면서 단순한 군사력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당시 양 세력의 문화적인 차이가 지금으로 따지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만큼 벌어져 있었을 것 같다. 이곳의 건물과 정원은 확실히 유럽을 다니며 보는 것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다른 문화권의 작품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고 기독교 문화의 산물들을 보며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이곳의 이슬람 문화권의 작품은 보다 디테일하고 섬세했다.
메슈아르 궁전은 아랍풍의 타일 장식이 이국적이었는데 재판을 하던 법정이었다고 한다. 안쪽에는 기도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알바이신 지구의 전망이 보인다. 아마 여기서 그 당시 왕은 서민들의 지역을 내려다보며 백성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꼬마레스 궁전은 헤네랄 리페의 정원에서의 감동을 더욱 배가 시키는 정원이 감동적이었는데 안뜰에는 사각형의 큰 연못이 있었고 주변에는 푸른 나무와 꽃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앞에서와 같이 타일 장식에 감탄하게 되고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종유석 형태의 돌들이 자꾸 눈길을 가게 만든다.
라이온 궁전은 안뜰에 사자가 있는 분수가 있는데 왕만의 사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왕을 제외한 어떠한 남자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사자가 있는 분수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 그리고 기둥과 벽을 장식하고 있는 정교한 석회 세공이 모든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궁전이었다.
나스르 궁전의 내부를 보기 전 까지는 알람브라 궁전 입장권과 별도로 시간까지 정해서 다시 발부된 입장 티켓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 나스르 궁전은 이렇게 힘들게 볼 가치가 정말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그것도 남쪽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이처럼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덤이다.
나가기 싫어서 다시 한 번씩 보고 느끼고는 밖으로 나오자 파르탈 정원(Jardines de Partal)이 마지막으로 보이는데 귀족들의 정원이고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아랍인 들에게 빠질 수 없는 큰 연못과 잘 조성된 정원이 있는 예쁜 곳이었다.
이렇게 알람브라 궁전 관람을 마무리했다. 관람 후에도 감동이 남아 있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고 아들 역시 꼭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 알게 된 사실은 소문난 잔치에도 먹을 것이 넘쳐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알람브라 궁전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로 단체 관광객들이어서 대형 관광버스들이 순서대로 자기 여행객들을 태우고 떠났고 마지막으로 떠들썩한 터키 관광객들과 우리만 남게 되었다. 외국인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아이들 몇 명이 우리한테 와서 말을 걸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로 싸이를 외치면서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이 과연 강남 스타일이라는 한국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접한 한류 기사를 볼 때마다 약간의 과장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었는데 막상 유럽에 와 보니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형 버스 한 대가 와서 이 터키 단체 관광객들을 태우고 떠나자 조금 전까지 알람브라 궁전 관람객들로 북적이던 정문 앞 공터에 거짓말 같이 나와 아들 2 사람만 있게 되었다.
아들이 이럴 때만 패키지 관광이 그립다고 한다. 오늘 같이 하루 종일 관광으로 지쳐 있을 때는 버스에 타고 숙소인 호텔 앞에 바로 내려주는 단체 투어가 부럽기는 하다.
오늘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처음 접한 이슬람 문화의 우월성이었고 최근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만을 보고 이슬람 전체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이었다.
그러고도 지친 몸으로 한참을 기다리니 시티 투어 버스가 왔다. 다시 광장 앞으로 내려와서 Subway에 들러 우리의 숙원사업인 30센티미터 대형 샌드위치와 콜라를 폭풍 흡입했다. 배가 상당히 불렀는데도 가격은 17유로밖에 안 했다.
숙소로 들어와서 샤워하고 4층 휴게실에 앉아서 스마트 폰으로 밀린 카톡도 하고 이메일도 확인하였다. 이곳에는 투숙객들이 모여 앉아서 여행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우리만의 현상은 아닌 듯 이들 역시 각자 가지고 있는 노트북이나 모바일 기기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국내 뉴스와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0시 넘어야 어두워지는 것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잊지 못할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안겨준 그라나다의 마지막 밤이 마루리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