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라나다를 떠나서 세비야로 가는 날이다. 그렇다고 세비야에서 1박 하는 것은 아니고 야간 버스를 타고 바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들이 일정을 이렇게 세운 것은 세비야가 볼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이 계절의 세비야는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로 관광이 너무 힘들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사실 며칠 전 그라나다에서 아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 책자를 보다가 이곳 안달루시아 지역의 말라가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들에게 포르투갈 가는 일정을 변경해서 모로코를 다녀오자고 했다. 아들도 솔깃해했으나 이미 리스본에서 이탈리아 로마 가는 비행기 편이 예약되어 있어서 힘들다고 했다. 한국에서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 놓아도 현지에서 여행 중 새로운 정보에 접하게 되고 그러면 이렇게 여행 일정을 변경하는 경우를 자주 했었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표가 예약되어 있어서 불가능하게 되었다. 때로는 너무 완벽하게 모든 스케줄을 예약하고 오는 것이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아무튼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서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는 무산되었다. 한국에서 이 책자를 먼저 보았다면 아마도 이 일정을 당연히 넣자고 이야기했을 텐데…
사실 아들은 포르투갈이 처음이지만 북아프리카에서는 오로지 이집트만 경험했던 나로서는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 포르투갈보다는 모로코가 훨씬 구미가 당겼다.
또 이 경로가 과거 8세기 이슬람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 시 이용했던 경로이니 그곳을 다녀오면서 한 번 그 당시 상황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 가는 기차는 아침 8시 48분 출발이라고 한다.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7시경 어제와 같이 4층으로 올라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러 아들이 로비로 내려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원과 함께 왔다. 아들이 나한테 이야기 하기를 로비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부재중 팻말을 올려놓고 올라온 것이라 한다. 아주 작은 호텔이다 보니 직원들이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있는 듯했는데 이런 와중에도 이 직원은 어제보다 더 자상하게 주스는 무얼로 하겠는지 커피는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빵과 시리얼 종류는 어떻게 할지 등을 물어보고는 정성스럽게 아침을 차려 주었다. 이 작은 호텔은 마지막 떠나는 날까지 우리를 감동시켰다.
아들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하는 배낭여행을 체험하다 보니 허름한 숙소이지만 5성급 호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따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호텔은 다음에 아내와 다시 이 곳을 오더라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4층 응접실에서 많은 여행객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많은 정을 들게 했다.
아침 식사 후 아마 오늘 하루 중 만나지 못할 와이파이가 되는 이곳 4층에서 모든 카톡들을 다 확인 및 답장하고는 역으로 출발했다. 떠나면서도 아쉬움이 남았고 정들었던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상당히 섭섭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곳과는 많은 정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세비야로 향했다. 8시 48분에 출발해서 12시 도착이니 3시간 이상 걸리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기차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무엇보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 새로웠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 가는 길의 풍경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와 다른 대초원 같은 느낌이 났다. 이름 모를 키 작은 푸른 나무가 계속 나타났고, 지평선이 보이나 싶으면 먼발치의 산이 보이는 그야말로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 지대지만 제법 산이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었다. 아마도 스페인 중남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주도이다. 오페라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이고 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플라멩코의 본 고장이다. 그리고 그라나다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어우러진 멋진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정열적인 도시인데 우리가 방문하는 이 시기는 정열적이라기에는 너무 태양이 뜨거운 시기였다.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며, 이런저런 생각도 하는 와중에 기차는 세비야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벌써 달구어진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훅 올라왔다. 세비야의 여름은 듣던 대로 뜨거움 그 자체였다.
아들은 리스본 가는 야간 버스표를 사기 위해서 버스 터미널부터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재빨리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알아보고 있었다. 이 곳 버스 터미널은 두 곳이어서 리스본 가는 터미널을 확인하고 그곳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보았는데 중앙역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제법 멀리 있었고, 무엇보다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이 없었다.
당연히 나는 택시를 타자고 하였고, 아들은 버스를 갈아타고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 돈으로 편히 택시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배낭여행답게 고생스러워도 버스를 타자는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여야 함에도 그 당시 나는 고집부리는 아들에게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도 세비야의 살인적인 더위에 아들과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아들이 고집대로 앞장서서 걸어갔고 우리는 큰 가방을 끌면서 겨우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C2를 타고 도중에 내려서 C4로 갈아타야 한다고 인포메이션에서는 가르쳐 주었고, 어디서 갈아 타야 하는지 확실치 않은 아들은 정류장에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있었다. 영어가 다들 안 되었는데 그중 떠듬떠듬 영어를 하는 여성 한 분이 힘들게 아들과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약간 화도 나고 지쳐있던 나는 아예 관여치 않고 멀찍이 서 있었는데, 아들이 다시 와서 갈아타는 것이 힘들 수 있으니 조금 걸어가서 아예 C4를 타자고 한다. 아마 어떤 분이 그런 노선을 가르쳐 준 것 같았다. 다시 고행이 시작되었다. 큰 가방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같이 이곳 사람들이 금방 나타난다는 버스 정류장은 한참을 걸어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 겨우 버스 정류장을 만났는데 그곳에는 C4노선버스는 없었다. 상황이 계속 안 풀리자 나는 못 참고 폭발할 까 봐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짜증을 달래기 위해서 계속 긍정적인 생각들을 했고, 결국 내 생각의 끝은 가장 본질적인 사실, 즉 아들의 혼자 배낭여행에 내가 따라온 것이고 이런저런 아들 결정에 내가 관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계속 주지 시키면서 화를 달래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자 오히려 당황스러워하는 아들을 내가 달래면서 다시 C4노선버스가지나가는 정류장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영어가 안 되었고 그나마 조금 되는 사람을 만나면 모른다고 했다. 사실 이해는 되는 것이 나 역시 서울 버스 노선을 내가 타는 것 말고는 잘 모른다. 다시 지치기도 하고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는 아들을 위로하면서 정류장을 찾아서 갔는데 모든 여행의 결말이 그렇듯이 결국은 찾아서 가게 되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아들과 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상당히 지쳤는데 버스 터미널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배낭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앉을자리도 없었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들은 자리 하나를 마련해서 나를 앉아 있게 하였고 본인은 버스표를 사기 위한 줄에 서 있었다. 너무도 힘들 아들 때문에 잠시 앉아 있다가 내가 줄을 설 테니 교대하고 앉아서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앉아 있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앉아서 보고 있자니 여러 버스 창구 중에서 한 버스 창구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다른 창구들은 한산했다. 아들 이야기는 길게 늘어선 줄이 있는 버스가 유로패스를 제시하면 할인되는 버스라 한다. 그런데 각자 문의하는 것이 많은 건지 아니면 전산 장애가 있는지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성질 급한 사람들이 앞에 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기도 하고 항의도 하고 해서 무언가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유럽은 점잖게(?)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줄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해서 나는 아들한테 할인이 안 되더라도 한산한 창구 쪽 버스를 타자고 했는데 역시 여기서도 아들은 요지부동 이었다.
앞에서와 같이 아들 여행이지 내 여행이 아니니 가만히 있자 하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반나절도 안 남은 세비야는 전혀 보지도 못하고 리스본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아무리 비용 절감도 좋지만 비용 절감이 여행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시간을 벌어야 세비야가 어떤 곳인지 느낌이라도 가질 텐데…
그런데 한 시간이 더 지나자 나는 못 참고 다른 창구에 가서 가격을 알아보았고, 가격이 별 차이가 없었는지 결국 아들은 내가 알아본 창구의 버스표를 구입했다. 진작 이렇게 의사결정을 했더라면 이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아들의 배낭여행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표를 구입한 후 알아보니 터미널 안에 코인 로커가 있었다. 각각 3.5유로씩 주고 가장 큰 락카를 빌려서 큰 짐을 집어넣고 나니 그제야 시장기가 밀려왔다.
터미널 안에 큰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서 빠에야를 먹었다. 5년 전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참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빠에야에 카레를 넣었는지 붉은색이 아닌 노란색이어서 5년 전 감동적인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부터 아들에게 오리지널 빠에야를 먹여주고 싶었는데 아마도 카레가 건강에 좋다고 하면서 카레 빠에야가 인기를 끌지 않았나 추측된다.
식사를 하고 나니 조금 힘이 났고 우리는 세비야 시내로 나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날 세비야 시내는 텅 비어 있었고 다니는 사람은 다 관광객들뿐이었다. 현지인들은 다 집에서 안 나오고 관광객만 드문 드문 다니고 있었다. 스페인 도착해서 처음 느끼는 견디기 힘든 더위였다. 시간도 없고 힘도 없고 해서 시티 투어버스를 타고 한 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버스 요금은 18유로씩 이었는데 버스 2층에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의 뜨거운 태양은 사정없이 우리를 공격했다.
중심가에 역시나 카테드랄이 있었는데 버스에서 잠시 내려서 구경했다. 원래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자리라 한다. 15세기에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면서 건설했다고 하는데 공사 시작 후 100년이 지나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인데 규모가 상당히 크고 특히 외관이 아름다웠다. 스페인에서는 최대 규모의 대성당이고 세계적으로도 로마의 싼 삐에뜨로 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의 뒤를 잇는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대성당이다.
외부만 보고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내부가 상당히 볼 만한 대 성당이었는데, 한정된 짧은 시간과 더위로 지친 체력은 내부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 부분이 아쉬운데 다음에 또 한번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이 그대로 보존된 반면 이곳은 이슬람 사원을 헐고 지었다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 다행히 이슬람 사원의 첨탐이었던 탑은 허물지 않고 남아 있어서 이 카테드랄의 종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대성당을 보면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대성당 주변을 도는 마차도 있었는데 이날의 더위는 감히 시도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카테드랄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이미 온몸이 젖을 정도로 이날의 더위는 끔찍했다. 근처 Bar에 들어가서 시원한 슬러시도 먹고, 이곳의 와이파이가 여의치 않자 근처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옮겨서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실내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물론 이곳에는 와이파이도 가능해서 아들을 만족시켜 주었고, 이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 조금 걷다가 카페에 가서 저녁식사로 햄버거 셑 메뉴를 먹었다. 8.5 유로의 저렴한 식사였지만 가격 대비 제법 훌륭한 식사였다.
세비야의 더위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인 우리들마저 실내에서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야간 버스 출발 시간이 자정이었으므로 해가 한풀 꺾이자 우리는 시내의 공원에서 스페인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이제 야간 버스 시간에 맞추어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면서 세비야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이제 이 잠깐의 세비야 체류로 스페인과는 작별이다. 상당히 아쉬웠지만 훗날을 기약해야만 했다.
떠나는 스페인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고 이제 우리가 갈 포르투갈에 대한 기대감이 같이 병존하는 그런 밤이었다.